『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35. 전체적으로 학문적 방법들은 그 외의 어떤 결과와 같은, 적어도 그만큼은 중요한 연구 성과이다. 왜냐하면 학문적 정신은 방법에 대한 통찰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며 학문의 모든 결과도 만약 그 방법을 상실한다면, 미신과 무의미가 다시금 만연되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사람들은 학문의 성과에 대해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 사람들은 대화에서, 즉 대화 속의 가설들에서 자신들에게 학문적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 그들은 오랜 훈련의 결과로 모든 학문적 인간의 정신에 뿌리를 박아온, 사고가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데 대한 본능적인 불신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대체로 한 문제에 대하여 어떤 가설을 발견해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후 그들은 이 가설에 대하여 열광하게 되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그들에게는 그 의견 중에서도 신념으로서의 의견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해명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그 문제의 해답과 비슷해 보이는,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착상에 열중한다 : 이것으로부터,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는 가장 나쁜 결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하나의 학문에 대하여 철저하게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그러면 그는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이 충고는 특히 여성들에게 해주어야 한다. 오늘날 여성들은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가설의 희생자가 되어 있으며 게다가 이 가설이 재치 넘친, 감동시키는, 생기를 불어넣는, 힘 있게 만드는 인상을 줄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교양인들 대부분이 지금도 여전히 사상가들에게서 신념을 갈망하며 신념 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확실성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자는 스스로 힘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강하게 매료되기를 바란다. 후자에 해당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점과 여기서 언급한 힘의 증대라는 이점도 고려하지 않는 객관적인 관심만을 가지고 있다. 월등히 우세한 계층에 있는 전자는, 사상가가 천재처럼 행동하고 스스로 천재라고 부르는 곳에서는, 즉 마치 더 높은 존재처럼 당연히 권위가 주어지는 것만을 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천재가 신념들에 대한 정열을 유지하며 학문의 신중하고 소박한 의식에 대하여 불신감을 불러일으키는 한, 비록 그가 자신을 여전히 진리의 구혼자로 믿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진리의 적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7)
머리가 좋고 재치 있는 사람들도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학문적인 결과를 겉핥기로 배울 수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학문적 정신'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학문적 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한다. 하지만 재치만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본능적인 불신감'이 없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그럴듯해 보이는 가설(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 생각이 주는 기쁨이나 매력에 빠져, "이게 정말 사실일까?"라고 꼼꼼히 따져보는 과정을 생략하고 만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에서 이런 태도는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니체는 누구나 적어도 하나의 학문을 깊이 있게 공부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진실 하나를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엄격한 방법과 신중함이 필요한지를 몸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자신을 감동시키고, 힘이 솟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란다. 즉,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힘을 주는 '믿음'을 선호한다. 반면,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적 만족을 배제하고 오직 객관적인 진실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중은 마치 천재처럼 행동하고 권위를 내세우는 사상가들에게 열광한다. 하지만 니체는 경고한다.
어떤 사상가가 신중하게 검증하는 학문적 태도를 무시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맹목적인 신념만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가 비록 자신을 '진리의 탐구자'라고 주장할지라도 사실 그는 '진리의 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