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넘어선 투명한 시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36. 물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천재, 즉 정의의 천재도 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어떤 철학적, 정치적 또는 예술적 천재성보다 그것을 더 낮게 평가하려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이 천재의 방식은 사물에 대한 판단을 현혹시키고 혼란시키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싫어한다. 따라서 정의의 천재는 신념의 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이거나 죽은 것이거나, 실재적인 것이거나 생각된 것이거나 간에 모든 것에 그것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그 일을 위에서 정의의 친재는 그것의 의미를 순수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사물을 가장 밝은 빛 속에 세워두고 신중한 눈빛으로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적, 즉 맹목적이거나 또는 근시안적인 신념들 (남성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 ㅡ여성들에게 그것은 ’믿음‘ 이라고 불린다)에도 신념의 본질적인 것을 부여할 것이다ㅡ진리를 위해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7)


정의의 천재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싫어한다. 우리의 눈을 가리는 편견, 귀를 막는 고정관념, 그리고 마음을 현혹하는 감정적인 동요들은 정의의 적이다. 예술적 천재가 감정을 고양시키고, 정치적 천재가 군중을 선동한다면, 정의의 천재는 차가울 정도로 냉철하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정의의 천재는 필연적으로 '신념의 적'이 된다. 신념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믿음은 안경에 색을 입히는 것과 같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색깔로만 해석하게 한다. 정의의 천재는 이러한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려는 자다.

니체에게 있어 정의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별하거나 죄를 벌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실제 하는 것이든 상상 속의 것이든, 모든 존재에게 그에 합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어떤 대상에게 올바른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순수하게 인식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과대평가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고 해서 깎아내리지 않는 태도다. 정의의 천재는 모든 사물을 '가장 밝은 빛' 속에 세워둔다.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이 없도록,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가 대상을 가리지 않도록, 그는 신중한 눈빛으로 그 주위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관찰한다.

이러한 정의의 천재가 도달하는 경지는 놀랍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적인 '맹목적인 신념'에게조차도 그것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적을 비난하고 배척하기 바쁘겠지만, 정의의 천재는 신념이 왜 생겨났는지,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일지라도,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가장 밝은 빛 아래서 공정하게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가장 고귀하고 어려운 천재성, 즉 '정의의 천재'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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