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철학을 찾는 자유로운 영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38. 방랑자 - 어느 정도 이성의 자유에 이른 사람은 지상에서는 스스로를 방랑자로 느낄 수밖에 없다. 비록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여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왜냐하면 이와 같은 목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그것에 대하여 눈을 크게 뜨고 보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개별적인 것에 너무 강하게 집착해서는 안된다. 변화와 무상함에 대한 기쁨을 가진 방랑하는 그 무엇이 그 자신 속에 존재함이 틀림없다. 물론 그러한 사람에게는 지치고 그에게 휴식을 제공할 도시의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나쁜 밤들이 오게 될 것이다. 아마 게다가 동방에서처럼 사막이 문까지 뻗쳐 있고, 맹수들은 멀리서 그리고 곧 가까이에서 울부짖으며 강한 바람이 일고 도둑들이 끄는 수레에서 그의 짐승들을 홈쳐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아마 사막 위에 있는 또 하나의 사막과 같은 끔찍한 밤이 사라지고 그의 마음은 방랑에 지치게 된다. 아침해가 분노의 신처럼 볼타면서 떠오르고 도시가 열리게 되면, 그는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마 문 앞에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막, 더러움. 기만, 불안정을 본다 - 그리고 낮은 밤보다 더 나쁘다. 아마 이러한 것이 언젠가 방랑자의 신변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 이에 대한 보상으로 다른 지방과 다른 날들과 같은 기쁨에 가찬 아침이 온다. 그는 그때 이미 어두운 빛 속에서 뮤즈의 무리들이 그의 곁에서 춤추며 산의 안개 속을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후에 그가 조용히 오전의 영혼의 균형 속에서 나무품 사이를 거닐면, 그 나무 꼭대기와 우거진 잎에서 좋고 밝은 것들, 즉 산과 숲 그리고 고독 속에 살고 있는 자유정신들의 선물이 던져진다. 자유정신들은 그처럼 어떤 때는 쾌활하고 또 금방 생각에 잡기는 현자, 방랑자 그리고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이른 아침의 비밀에서 태어나, 왜 열 번가와 열두 번째를 치는 종소리 사이의 낮이 이렇게 순수하고 투명하며 빛나도록 화사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 그들은 오전의 철학을 철학을 찾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50)


방랑자의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이다. 그는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장소나 사람, 혹은 이념에 너무 강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집착은 시야를 좁히고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방랑자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 그리고 덧없이 사라지는 무상함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유연함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즐기는 존재다.

자유로운 방랑의 길에는 반드시 시련이 따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 휴식을 찾아도 도시의 문이 닫혀 있는 '나쁜 밤'들이 찾아온다. 사막은 끝없이 뻗어 있고, 맹수들의 울부짖음과 도둑들의 위협이 도사리는 밤은 방랑자의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더 가혹한 것은 아침이 밝았을 때 마주하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도시의 문이 열릴 때, 방랑자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사막보다 더한 황폐함을 본다. 더러움, 기만, 불안정함으로 가득 찬 도시의 민낯은 밤의 어둠보다 더 나쁘게 다가온다. 안락해 보이는 정착민들의 삶이 사실은 또 다른 형태의 사막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러나 방랑자에게는 이 모든 고난을 보상해 줄 '기쁨에 가득 찬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도시의 소음과 혼란을 뒤로하고, 조용히 영혼의 균형을 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선물이 주어진다. 산과 숲, 그리고 고독 속에 살고 있는 자유정신들이 던져주는 선물이다.

니체는 이를 '오전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열 번째와 열두 번째 종소리 사이, 그 오전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순수하고 투명하며 빛나는 시간이다. 방랑자들은 이 이른 아침의 비밀 속에서 태어난 현자이자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밤의 어둠과 도시의 탁함을 씻어내고, 맑고 화사한 얼굴로 삶의 본질을 사유한다.

방랑자는 길을 잃은 자가 아니다. 그는 세상의 혼란과 기만에서 벗어나, 가장 맑고 투명한 정신으로 삶을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걷는 자다. 고독과 시련을 견뎌낸 끝에 마주하는 그 '오전의 투명함'이야말로, 방랑자가 찾는 진정한 철학이자 삶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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