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친구들 속에서
끝말.
1.
서로 침묵하는 것은 아름답다.
-서로 웃는 것은 더욱 아름답다.-
비단 같은 하늘 아래
이끼와 너도밤나무에 몸을 맡기고
벗들과 소리내어 기분 좋게 웃고
하얀 이를 보이는 것은.
내가 잘할 때 우리는 침묵하자.
내가 못할 때 우리는 웃어버리자.
그리고 점점 더못해버리자.
점점 못하고 점점 더 심하게 웃자.
우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친구들이여! 그래야만 되지 않겠는가?
아멘! 그리고 안녕!
2.
변명도 말라! 용서도 말라!
그대 기쁘고,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들이여 베풀어다오
이어리석은 책에
귀와 마음과 쉴 곳을!
믿어다오, 친구들이여! 저주가 되지 않도록
나의 어리석음이 나에게!
내가 발견하려는것, 내가 찾는 것 -
그것이 책 속에 있었던 적이 있는가?
내 속의 어리석은 자의 무리를 존경하라!
이 어리석은 자의 책에서 배우라,
어떻게 이성이 오며 - ’이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그럼 친구들이여! 그래야만 되지 않겠는가?
아멘!그리고 안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54)
날카로운 이성의 칼날을 휘두르던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의 끝자락에서 아포리즘 대신 한 편의 시(詩)를 놓아둔다. 긴 여정을 마친 친구들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인사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깊은 신뢰, 그 고요함 속에 깃든 편안함은 아름답다. 니체는 정적인 이해를 넘어선, '동적인 긍정'으로서의 웃음을 예찬한다. 비단 같은 하늘 아래,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벗들과 소리 내어 웃는 순간이야말로 삶의 무거움을 털어내고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는 가장 순수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할 때 우리는 침묵하자. 내가 못할 때 우리는 웃어버리자"라는 구절은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지금까지 잘했을 때 칭찬받고 싶어 했고, 실패했을 때는 숨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더 못해버리자"는 역설적인 제안은,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유쾌하게 놀이처럼 받아들이자는 삶의 높은 지혜다.
내 안의 어리석음을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겠다는 당당함, 그것은 내가 찾는 진리가 박제된 책 속의 지식이 아님을 웅변한다. 이성은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탑이 아니다. 진정한 이성은 수많은 시행착오, 오류, 그리고 우리가 '어리석음'이라 부르는 그 진흙탕 같은 과정들을 뒹굴며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목적지다. 나의 어리석음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였던 것이다.
니체가 친구들에게, 그리고 시대를 넘어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명확하다.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부조리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결점을 비난 대신 웃음으로 감싸 안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며, 춤추듯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자, 뜨거운 긍정이다.
나의 서툰 실수들 앞에서 침묵하며 자책할 것인가, 아니면 시원하게 웃어버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