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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 Aug 01. 2019

자발적 경단녀 캐나다로 오다

또다시 자발적 경단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현재의 타이틀은 한의사...

4 살배기 딸 쌍둥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한의대는 나의 두 번째 대학이고, 한의대 입학 전에는 삼성전자를 다녔다.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삼성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개원 연차가 오래된 것도 아니다. 한의대 졸업 후 2018년 7월에 첫 개원을 했고 자리를 잡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6개월 남짓,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나가는구나 싶던 찰나, 갑작스럽게 남편으로부터 캐나다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 그리고 결정...


나에게는 사실상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고작 1년이고 길지 않은 파견이니 남편 홀로 캐나다로 향하고 아이들과 한국에 남는 것. 

주 6일 한의원 근무하는 한의사의 생활과, 쌍둥이 두 녀석을 오롯이 돌보아야하는 엄마로써의 생활... 

월화수목금금금의 하드코어한 1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는 한의원을 접고 따라가는 것. 

다만, 한의원 개원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한의원을 양도하게 되면 금전적인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로 공들였던 나의 노고는 물거품이 되겠지... 하지만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있을 수 있고, 아이들에게 값진 경험을 안겨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 나 홀로 생각했던 세 번째 선택지는...

한의사로써 매우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 나는 홀로 한국에서 열심히 내 일을 하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가는 것.....

주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선택지이긴 하다. 아마도 시어머님께 이 말씀을 드렸다면 한의사를 그만두라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고심 끝에 두 번째 방법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 정리하고 캐나다로 갈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갑자기 또 복잡다단한 감정이 밀려온다.      

어쨌든 난 또다시 “경단녀”가 되어버렸구나...     


생각해보니 이런 류의 경력 단절이 처음은 아닌 듯하다.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왔을 때, 그 때가 “자발적 경단녀”의 시작이었다. 남들 다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는, 취준생에겐 선망의 대상인 삼성전자를 제 발로 박차고 나오다니...  주변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조금은 짜릿했고, 놀람이든 부러움이든 우려든 걱정이든,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한결같이 격렬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어떤 사건들이 있었던 간에, 어떤 고민이 나를 궁지로 몰았던 간에 회사는 나에게 나가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자발적인 퇴사이므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는 언지를 주었을 뿐.      


두 번째는 어렵사리 들어갔던 한의대를 임신과 출산으로 휴학했을 때다. 

그때도 온전히 나의 선택이긴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졸업과 개원을 위해 임신과 출산을 미루었던 동기가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그 친구의 나보다 빠른 성공과 순조로운 동선을 부러워하며 한탄할 자격이 내겐 없다. 어쨌거나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세 번째는 드디어 개원을 하고 이제 막 자리를 잡아나가려는 이 중요한 시점에, 

남편을 따라, 아니 남편 회사의 지시를 따라 한의원을 접고 따라가야 하는 이 상황...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 같이 가지 않는 것이 어쩌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주변(특히 시어머님...)에서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난 또다시 자발적(?)으로 경력 단절을 선택했고, 

또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캐나다로 가면 어떤 일상이 펼쳐질까?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 따위(?)는 없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음식을 하면서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 식사, 점심 도시락, 저녁 식사를 만들어야하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준비를 해야 하고, 그 외 시간은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보내야겠지. 

애들이 학교를 들어간다면 픽드랍도 해야 할테고, 주말이면 부모님께 애들 맡기고 잠시라도 해방될 수 있었던 작은 사치조차 기대할 수 없을테다.   

  

이토록 편치 않은 마음을 뒤로 한 채,

한의사로서의 내 정체성 확인을 위해

내 인생에 또 다시 경단녀로 쉬어가는 페이지는 만들지 않기 위해 

뭐라도 끄적거리며 책을 써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싸늘한 조소로 대답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많은 시간 보내지 못했으니, 제발 1년 만이라도 아무것도 할 생각 하지 말고, 온전히 애들 위한 시간 만들어 주라고....      


내가 브런치라는 공간으로 뛰어든 이유...     


사실, 글 솜씨는 결코 뛰어나지 않다. 무미건조한 보고서나 논문 등을 써보았던 경험 외에는, 혹은 신변잡기적 일기를 블로그에 끄적여 보았던 것 이외에는 차분히 앉아 글을 써 본적도 없다. 

어떤 "글"을 써볼까... 구상하고 있는 내용도 지금은 딱히 없다. 

캐나다에서 딸 쌍둥이(라 쓰고 비글둥이라 읽는...) 현실 육아맘의 고군분투기?

한의사 엄마의 “외국에서 1년 동안 병원 가지 않고도 우리아이 건강하게 키우는 소소한 팁”?

혹은 한의사로써 평소 가지고 있던 한의학 관련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독특하다면 독특한 나의 이력들, 취미들... 가령 나름 잘 나가던 직장인 밴드의 보컬, 여성 카약커 & 낚시광, 중국어 비전공자의 동시통역사 도전기, 캐나다 현지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로만 만드는 한식 요리? 이런 잡동사니 같은 얘기들을 모두 끌어 모아볼까? 

그것보다 좀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경력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해 작은 토로(라고 쓰고 분기탱천이라고 읽는다)라도 해볼까... 

캐나다행을 결정 하기 전 혹은 그 이전부터 계속 되어 온, 아예 "B급도 안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속시원히 풀어내볼까... 

이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맴맴 돌기만 한다.      


하지만, 비록 글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도... 요즘 트렌드에 맞는 힙한 컨텐츠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문구가 나에게 던져 준 가슴 떨림에 이 곳을 자꾸만 찾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외국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릴없이 맘 편히 지내는 시간도 어쩌면 너무나 소중하고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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