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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22. 2022

BC 2300, 삼한의 번- 상나라

한민족의 시작


상나라는 나라가 아니라 그냥 군 사령부다.


     

상나라는 고조선과 몇 십 년 차이나지 않은 시점 만들어 졌으며, 지금의 낙양(뤄양) 근처를 중심으로 황하를 따라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수도가 없었고 당시 사령관이 죽으면 그 지역에 큰 무덤을 만들었던 게 지금 남아있는 흔적들이다. 지금의 기록에 따르면 상나라는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 번 천도를 했다고 하나, 이는 상나라가 군 사령부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군사조직에 필요한 물자는 후방에서 지원되었다. 이에 후방에 큰 도시가 만들어져 지원 물자를 생산하였고 군사령부 인근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지금의 산둥반도 인근에서 생산된 식량 등의 물자는 황하를 이용해 공급되었고 결과적으로 상업의 시초가 만들어졌다.  당시 지원받은 물자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군은 ‘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를 행하는 이가 ‘상인’이 되었고 그것이 동방 무역의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상나라가 은나라라고 알려지게 된 계기는 상나라 유적이 일본인에 의해 처음 발견된 곳이 은허라는 지역이었고, 이들이 은나라라 이름 붙였던 이유일 뿐이다.            



        

한편 당시 회화족은 국가의 체제를 갖지 못했다. 또한 지금도 그렇듯 만물기원설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은 상나라에 맞서는 자신들의 국가가 필요했다. 그것도 상나라 보다 더 오랜 기원을 갖고 있어야 했다. 이에 ‘하나라’가 만들어 졌다. 황토고원 출원의 회화족이기에 하나라는 지금의 몽고와 신장 사이, 산서성에 기반하는 가상의 국가, 하나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황하문명의 실체이기도 하다.             





어쨌든 시키와 회화족을 막기 위한 체제가 만들어졌다. 고조선의 북서쪽은 구려족이, 서쪽은 상나라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동쪽은 부여가 남쪽은 생존중심의 마한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고조선은 천년 간의 안정기에 들어설 수 있었다.          




1기는 기원전 2300년대이고, 아직 국가가 아니다. 부여족에 의한 군사기지였다.     




2기는 기원전 1600년대인데, 상인의 국가가 되었다. 상인은 중국인과의 혼혈이다. 위치가 거기다 보니 피가 섞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조선과 상관없어! 우리는 독자적인 국가야 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3기는 기원전 700년대인데, 상의 멸망기이다. 이때는 주변 제후국의 번성기였다. 대표적인 게 주였다. 2기까지는 상나라(은나라)만 있었는데 이게 주변으로 퍼졌다. 주변 야만인들이 국가화되었다. 그것들 중에서 주나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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