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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23. 2022

BC 2200, 요, 순 그리고 우

한민족의 시작

황제씨가 죽은 지 몇 백년 지난 시점, 이는 구심점이 되었다. 여와, 복희, 황제라는 구심점으로 회족과 화족이 점점 불어났다.   



  

기원전 2200년대 쯔음, 여기서 요라는 임금이 나타났다. 그리고 요에 의해 회족과 화족이 회화족으로 통합이 되었다. 황토고원 위쪽에 살던 이를 회족이라 했고, 강가에 살던 이를 화족이라고 했었다. 예맥족과 같은 개념이었다. 그냥 마을 서너개 정도의 촌장이었다. 그곳에 집 한채 지어놓고 몇몇 청년들 데리고 힘자랑 했던 수준이다. 그런데 중국에선 이를 임금이라 칭하고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 말하고 있다. 그냥 경쟁상대인 상나라 보다 이전, 고조선과 견줄만한 허구의 나라를  만들어 낸 것 뿐이다.     




요의 아들은 순이었다. 그런데 순은 재능이 별로였다.      




그 다음 나타난 이가 우였다. 기원전 2200~2100년대 우가 치수를 했다. 그래서 황하강을 정리했다. 특히 구불구불했던 황하강은 홍수가 발생하면 여기저기 온 동네가 물바다가 되었다. 마치 지금 물난리난 중국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물들은 남쪽으로 흘러갔고 그것이 대습지의 수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의 치수를 통해 황하강의 범람이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대습지가 마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는 아사달에서 보낸 릴이었다. 다시 낙양에는 배달에서는 황하의 범람에 따른 피해가 너무 컸기에 이를 불쌍히 여긴 해결사였던 것이다. 우는 아사달에서 주로 건축을 공부했다고 한다.      




또한 우는 릴이었기에 신수를 다스릴 줄 알았다. 이 중 용과 교감하였고 물을 다스리는데 특화되었던 릴이었던 것이다. 기록에는 우가 용을 몰고 왔다고 한다.     




우 이후에는 치수가 중국 제 1관제가 되었다. 우 임금 이후에 중국은 계속 황하강의 강둑을 만들었다. 수 천년 동안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습지가 사라졌다.           




기원전 2330년 경 고조선이 세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족으로 구성된 상이 낙양 근처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시 상은 나라가 아니라 군파견지이다. 상나라가 만들어진 건 기원전 1600년 경이다.          




기원전 6000년 경, 서해평원이 서해로 변한 이후 황하의 물살이 느려졌다. 또한 황하는 치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비가 올 때 마다 범람하기 일쑤였다. 그런 황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다가 산둥반도의 서쪽에 있는 거대한 산, 태산을 만나면 거의 대부분 범람하게 된다. 이렇게 범람한 물은 남쪽 평야를 적시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거대한 늪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바로 이것을 대택지라 하며 태원(베이징)에서부터 시작하여 난징까지가 범위다. 중국 동부 연안과 중국 대륙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라버렸다. 대택지의 흔적이 지금의 중국 대운하로 그 폭은 100km가 넘을 지경이다.          




결국 대택지로 인해 황토고원의 회화족은 바다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기원전 2200~2100년 경, 우임금이 대택지가 사라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우임금이 중국 사람들 데리고서 댐을 쌓음으로 황하의 범람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들이 먹고 살만한 땅을 만들어 주면 더 이상 침략을 하지 않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하나를 주면 둘, 셋을 달라고 하는 종족들이기 때문이다.               


대택지가 사라짐으로 BC 6000 서해안 침강 이후 중국의 동해연안에 살고 있던 마한의 유민들은 지난 4천년간의 평안이 사라져 버렸다.



우가 그렇게 하니 중국인들이 우리 왕이 되어 주십시오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국에 사람 파견했다 졸지에 중국인들 때문에 고생하게 된 적이 여러번이다.     






여와, 복희가 그랬고

우도 그렇고

종간이가 그랬다.               




해서는 안 될 일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여와와 복희, 우가 그랬고 몇 백 년 후 종간이가 그랬다. 특히 종간의의 경우 죽은 지 몇 천 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욕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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