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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29. 2022

한단고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한민족의 현재


한단고기 관련 논란은 크게 3가지다.



1. 책의 자료가 고려시대 때 쓴 것인데, 국가, 인류, 전세계, 산업, 문화 라는 단어가 있다. 과연 그 자료를 고려 것이라 할 수 있나?



2. 한단고기에 따르면 기원전 1790년대, 다섯 개 별이 일직선으로 놓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시뮬레이션 해보니 하루 차이로 맞는 얘기였다. 하루나 차이가 나니 맞다 할 수 있나?



3. 한단고기에서 고조선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적어놨다. 이에 한단고기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나?



(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가 적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돈과 권력을 쥐고 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안 바뀌는 곳 중에 하나가 한국 사학계이다.)



한단고기 표지



한단고기에 대해 짚는다.



작성자에 대해서 : 한단고기는 과거에 여러 번 실패했던 이가 깊은 산에 들어갔고, 우연히 동굴 속 과거 역사의 파편을 발견한다. 이에 함께 할 사람을 찾았고 그와 함께 파편을 엮었다.




발생할 수 있는 역사적 오류는 크게 3가지 이다.




첫째, 발견된 파편 자체의 진실성, 완전성 등이다.



둘째, 파편을 발견하고 이를 엮은이가 가진 개인적 한계이다.



셋째, 과거 그 파편을 기록했던 이의 개인적 생각, 정치적 의도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한단고기를 작성한 이가 발견한 동굴에는 여러 시대의 역사 파편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가 많았긴 하나 신라의 것도 조선의 것도 있었다. 이를 1910년 경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먼저 우리는 조선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의로 타의로 대부분 태워버렸던 것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기록의 민족 아닌가. 과연 조선시대에만 실록을 적었을 것 같은가? 전국 곳곳에 상당한 수의 암각화가 남겨져 있다. 지금도 명승지 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낙서다. 돌에다 뭘 그리거나 새기는 건 우리의 유전자에 분명히 녹아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다. 당신들도 시조니 뭐 이런 것들을 바위에 새겼다.


멀리 주 문왕이 봤다는 하도낙서를 절벽에 새겨둔 이가 누구이던가.



기원전 삼사천년 전부터 바위마다 기록을 새겼던 사람들인데 중요한 역사들, 중요한 자료들을 고작 종이나 목간에만 남기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을 것 같은가?



우리는 철광석과 광물이 많이 발달했었다. 그래서 동굴 마다 기록을 남길 데가 많았고 실제로도 많이 새겼다. 또는 편마암이나 납작한 돌에 새겼다.



한편 신라 때부터는 절 만들 때 마다 자신이 아는 가장 중요한 지식을 기와에 새겼고 이를 절 바닥에 깔거나 탑 사이에 끼웠다. 이를 통해 절에다가 종교적 신성을 선사했던 것이다. 이게 전통이었다. 지금도 신라나 고려 때 창건된 절의 대웅전을 파보면 중요한 자료 엄청 나온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다. 역사 자료 만들어서 동굴에다 엄청 숨겨놓았다. 한단고기는 이런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한단고기를 읽을 때는 앞에서 짚은 3가지 단서를 유념해야 한다. 한단고기는 고려의 파편을 주로 하고 있다. 잘 구워진 것도 있고, 깨어진 것도 있고 그랬을 것이다. 이를 두세 명이서 정리하려다 보니 제대로 복원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한단고기를 엮은 이들은 체계적인 역사교육을 받은 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려의 언어를 몰랐으며, 결국 1900년대 현재의 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한단고기에 현재의 단어가 있다고 이를 버린다는 것은 바보 중의 바보일 뿐이다.



그런데 한단고기를 인정하지 않는 역사학계의 문제는 파편의 진실성이니 엮은자의 전문성 따위가 아니다.



한단고기가 왜 열풍이 불었냐 는데 관심을 돌려야 한다.



80년대, 군사쿠데타 세력은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이에 민족사를 이용하여, 협조하지 않는 친일파 세력을 견제했다. 군사정권이 친일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단고기를 끄집어 낸 것은 역사학자들이 아니다. 정치적 의도였다. 이에 역사학계의 분열이 발생했다. 기존 역사가들은 한단고기를 무시했고, 젊은 학자들은 이것을 파고들었다. 이게 배경이 된 지 십여년이 지났다. 재야학자들에 의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미 한단고기에 대한 연구가 꽤나 진전된 상황에서 이를 반대했던 일반 역사학자들에겐 더 이상 연구할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니 쭈욱 반대를 지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1790년대 천문과 지금의 과학기술로 진행된 시뮬레이션 결과가 일치함에도 이를 인정치 않는 논란이 있다.


이것은 일본이 빈번히 사용하는 논리방식이다.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원본이 있으면 원본을 없애버린다. 그런데도 사본이 있다면, 그 책 언제 편찬한거니? 그럼 그거 가짜네. 라고 사본을 무시해버린다.



원본이던 사본이던 그 안의 내용이 중요한 것인데, 일본은 억측을 부린다.




이 역시 3가지 관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먼저 정치적 관점을 배제시키고, 엮은이가 사용한 현재의 단어를 제거한 다음 남은 팩트만 가지고 논의를 하고 연구를 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네 역사학자들의 사대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지금 활동하는 많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우리네 관점이 아니라 이웃나라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집필한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역사서를 집필할 때, 이웃 나라가 최고다 라고 적겠나? 뭐 하나 건수가 생기면 저거 우리 거다 라고 적는 게 당연한 역사 집필 방향이다. 아니 그게 책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중국이 쓴 책에 맞춰 우리 기록을 해석하려고 하는가? 왜 일본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느냐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완용 마냥 나라 팔아 먹은 놈, 종간이 처럼 남의 나라 앞잡이 되어 우리나라 망하게 한 놈 만큼이나 미운 놈이 '남의 나라 시선으로 우리 역사 기록하고 해석하는 놈!!!!'이다. 더구나 우리 시선으로 역사를 재해석 하는 것을 방해하는 놈들이 누군지 그리고 그들에 의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똑똑히 말하고 있다.




그래 중국에서 우리를 동이라고 한다고 우리가 우리를 동이라고 해야 겠는가? 그네들이 우리나라를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나? 겨우 가끔씩 오는 사신들이 적은 걸 옮겨 적은 게 그네들 역사서에 포함된 우리네 이야기이다. 와서 주작잡기에 바쁜 사신들이 사실을 얼마나 파악했겠나?



중국인들 사망자 발표 누가 믿는가? 코로나 사망자도 그렇고 폭우 사망자도 그렇다. 아무도 믿지 않고 심지어 중국인들 조차 믿지 않는다. 하지만 100년 정도 지나보면 2021년 지하철 홍수 사망자는 300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말이 되는가? 폐차된 차만해도 6천대가 넘어가는데. 지금도 그런데 과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동계 올림픽을 열흘 정도 앞둔 현재, 코로나 발생하면 도시를 닫아버리는게 중국이다. 현재의 일도 마음대로 바꾸는게 중국인데 과거의 일은 고민할게 뭐가 있나? 바로 이게 중국의 춘추필법이고, 후한 때 부터 이런 작업이 엄청나게 일어났다. 후한 이전의 역사책과 이후의 역사책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그럴 경우 후한 이전의 책이 맞다.



일본도 다를 것 없다. 일본은 거짓말도 반복되면 진실이 된다고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인다. 지금도 보라. 코로나 초기, 일본의 크루즈선의 코로나 확진자는 일본내 확진자로 계수하지 않은 것. 그리고 이를 포함하지 않기 위해 WHO를 매수했던 것. 철저하게 자기들 역사에 불리한 기록 남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한단고기에서 고조선이 신화로 기술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는 엮은이가 원불교와 대종교 사람들이었다는 오류가 있다. 엮은이의 상황을 배제하라는 3가지 전제에 우선 해당한다. 다음으로 역사 기록자의 오류를 짚어야 한다. 한단고기에 사용된 자료들 대부분은 고려시대꺼다. 고려는 그 정통성을 고구려에 두고 있으며, 고구려는 북부여에 정통성을 두고 있는데 북부여는 기원전 1300년 경 고조선을 침략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침략 이전 1천년간의 고조선에 대해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고조선은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한단고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청구국, 치우천황에 대해 아주 큰 오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3천년경, 산둥에는 번조선이 있었다. 여기서 번은 국경지대의 군사시설을 뜻하는 것으로 국가가 아니다. 이곳의 총사령관은 치우씨였고 이는 세습되었다. 기원전 3천년 경, 만주는 배달한국의 영향권이지 아직 이주를 한 건 아니다. 아직 배달한국은 바이칼호수에 기반하고 있을 때였다. 이에 배달 한웅 중 한명인 자오지천황이 치우천황과 동일인물이라는 한단고기의 설정은 완벽히 틀린 것이다. 치우씨은 산둥반도 동쪽의 사람들을 지키는 군사령관 가문이다.



분명 한단고기는 한계가 많은 책이나 그가 봤던 고려의 역사 파편에는 진실도 담겨있다. 함부로 배제하지도 말고, 또 오류에 빠지지도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한임>의 이름으로 작성하고 있는 이 글에는 몇 가지 분명한 오류가 있다.

1. 시간이다. 최대한 시간을 현재 기준에 맞게 하려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지질대, 지각대, 알려진 역사적 사실 등을 고려하고 있으나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미흡하다. 그럼에도 심하면 천년의 오차를 갖는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아의 방주로 대표되는 마한 홍수 사건이다. 기원전 6000년을 기반으로 전후 1000년의 오차를 갖는다. 하지만 오히려 
아느 멸망 시기인 기원전 10,800년은 몇 십년 정도의 오차 뿐이다.

2. 지명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오류가 아닌 회화족의 습성에 따른 오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강의 이름, 산의 이름을 바꾼다.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의 것을 옮겨 붙인다. 대표적으로 패수, 요동, 요하 등 이다. 그런데 몇 백년의 시간은 강의 물줄기를 수백 km 나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거대한 강이 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요하다.



패수의 이동   <출처 : https://blog.naver.com/dgdragon> 

<시기에 따라 중국에서 불렀던 패수가 달라졌다. 아쉽지만 점점 동쪽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밀린 것이다. 그런데 빠진 강이 하나 있다. 요하와 압록강 사이,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송하강을 패수라 칭했던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3. 기원전 1300년 부터 삼국시대 사이의 일, 특히 아사달, 왕검성 폭발 이후 대략 1000년간의 일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단군을 통해 내려가던 우리 민족에 대한 기상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버림 받았던 시기 이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한단고기라는 책이 되살아 났다. 단군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앞에서 짚은 것 이외에도 틀린 부분 너무도 많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 개별 사건 자체 보단 그 사건의 배경과 흐름, 대처와 이후 미치는 영향을 이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하늘의 자손임을, 태양의 자식임을 잊으면 안 된다. 엄한 놈들이 태양의 자식이라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우리의 것을 모두 앗아갔다. 그 결과가 지난 300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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