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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Jan 27. 2022

BC 1200, 유라시아 전체 수천개 도시가 사라졌다.

한민족의 시작

인류리셋



기원전 1200년경, 우랄산맥 근방에 있던 시키족들과 시키족을 추종하는 무리들(RU)이 유라시아 전반에 대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동방에서부터 서방으로 대공세가 감행되었다. 처음에는 중앙아시아의 허브지역들, 고란 같은 중간기착지 도시들이 먼저 사라졌다. 고란은 여러 번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를 반복했다. 초원길의 중간기착지로서 중요했기에 공격을 여러 번 당했다. 중간기착지들이 사라짐으로써 동서 교역로가 끊겼고 결과적으로 동서정보교류가 끊겼다. 곧 동쪽 끝 아사달과 왕검성으로 대규모 침습이 이루어졌다. 그런 후 흑해에서부터 서방 침습이 시작되었다. 흑해에서부터 배를 타고 그리스와 지금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고 반대편인 히타이트도 모두 공격당했다. 그나마 바다에서 떨어진 아시리아와 바빌론은 안전했다. 이후 추격대를 조직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뒤진 후에야 그들의 근거지가 우랄산맥 근방인 것을 알았다.





그냥 갑자기 나타났다. 이것들은 수비란 걸 몰랐다. 이들은 휘어진 칼을 사용했다. 보통 전쟁이란 건 나타나고 난 다음 공격하다가 방어진을 만들어서 방어를 하다가 다시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방어도 없이 그냥 공격만 했다. 아마 상인 등으로 위장했던 것 같다. 무작정 도시 전체에 들어와 있다가 갑자기 공격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냥 공격과 파괴  뿐 이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자기가 다치거나 하면 자기 몸과 주변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근데 걔들이 일종의 화공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걸 태워 버리는 불을 붙여버렸다. 굉장히 순간적으로 고열을 발생시켰다. 두꺼운 성문이 그 불을 못 막았다. 일반 불처럼 붉은 불이 아니었다. 거의 푸르고 하얀 불꽃이 확 일어난 다음 재만 남아버렸다. 그 불이 연소되는 동안은 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재만 남겨 버렸다. 숯조차 안 만들어졌다. 이는 지금의 백린탄과 유사했다. 백린탄은 산소 차단하기 전까지는 전부 연소할 때까지 계속 타는 특성이 있다. 피부에 불 붙으면 피부 속으로 타고 들어가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백린탄 조차 이 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너무 뜨거웠다.     




더구나 이들은 마치 약물에 취한 것 같았다. 완전히 광기였다. 어떤 사람이 찔리거나 하면 움찔하는 게 본능이다. 그게 없다. 팔다리가 떨어져도 좀비처럼 그냥 돌진하는 거다.          




이집트 공격할 때는 걔들이 물에서 나왔다. 새벽에 물에서 나와서 도시 전반에 스며들었다. 싸움이 발생했을 때는 이미 온 도시에 그들이 스며든 상태였다. 그러고는 동시 다발적으로 다 태워버렸다. 파괴했다. 웬만해서는 성벽 같이 돌로 만들어진 것은 안 부서진다. 나무 등 일반적인 불로는 돌을 태울 수 없다. 당시에 약간의 석유를 쓰는 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고래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을 바탕으로 불을 만들었을 때이다. 그런 것은 색깔도 노랗거나 붉고 그으름도 많이 났다. 무엇보다 확 불붙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의 무기는 그 자신조차도 그냥 뼈마저 가루로 만들 정도로 엄청난 열을 냈었다. 폭발이 아니라 그냥 불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게 불탄 공간은 돌로 된 성벽이든 뭐든 재만 남았다. 형채가 남았다 해도 툭 치면 부서질 정도로 약해져 버렸다. 이 때의 성벽은 지금 남아있는 이집트 피라미드 돌과 같은 재질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문이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이들의 공격을 받은 유라시아 대륙의 수천의 도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자료를 찾다보니 이 때 당시에 문자들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점토에다 새겼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몇 개에는 그으름이 남아 있어서 화재로 인한 소실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한다.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돌도 타버리는데 진흙으로 만든 것들은 그냥 가루가 되어 버리는 거다. 그냥 만지는 순간 먼지가 되어 버리는 수준이다.     




이 정도라면 아사달과 왕검성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 이들은 아사달, 왕검성은 없애버렸지만 왜 왕험성은 남겼을까?     



완전히 파괴된 성들을 보면 평지나 바닷가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산지의 성들은 남았다. 왕험성은 산지의 성이다.      



평지의 성들은 완전히 아작 났다. 완전 죽은 땅이 되어 버린 거다. 그 공격을 받은 후 도시가 불 타버렸다.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든 불에 타버린다 해도 남은 흙을 다시 반죽하면 벽돌을 만들 수 있다. 도시를 재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격을 받아서 타 버린 흙은 벽돌로 만들 수가 없다. 흙과 모래가 갖고 있는 결합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린 상태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다 도시를 건설할 수 밖에 없었다. 도시를 하나 만들려면 터 닦고 굉장히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땅을 재활용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그 땅이 죽어버렸다고 한 거다.          




우랄산맥은 러시아 모스크바 동쪽에 있는 산맥이다. 우랄산맥을 넘으면 시베리아가 시작한다. 거기서 중앙아시아를 공격하고, 동쪽 끝 아사달과 왕검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걔들 침략은 이백년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약탈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죽이고 파괴하고 끝이다. 그곳에 사는 것도 아니다. 이미 다 태워버렸으니 살 수도 없었다. 약 먹은 것 같았다. 약 끝나고 나면 자기들도 못 견디는 것 같았다. 근데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서 불 지르고 파괴하고 막을 수가 없었다.       



    

자살테러급에 해당하는 공격인데 모르긴 몰라도 도시 하나에 1만명이 들어왔다고 친다면 수천명은 죽었을 것이다. 한 도시마다 만 명이 들어와서 30% 이상이 죽어 버렸다 라 가정한다 해도 지중해 동쪽에서만 해도 이삼십 개 이상의 도시가 있었으니 수십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시키가 애를 많이 낳는다 해도 평생에 스무명을 낳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 지역만 몇 십 개 도시다. 유라시아 전체에 수 천 개의 도시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다. 도시 하나당 만 명이 필요하다면 수 천 만 명이 필요하고, 이들을 중독 시키기 위한 약물은 또 어마어마하게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사라졌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공격할 때는 노파와 여성과 어린애들 까지 있었다. 처음에는 젊은 남자들 위주였는데 나중에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들을 막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사 만 명, 오 만 명이 살고 있는 읍 단위에 갑자기 만 명 정도의 외부인이 나타나서 온 건물에 불을 붙인다고 생각해보라. 외모도 크게 안 달랐다. 새벽이라서 알 수가 없었다. 초토화 되는데 잠깐이면 되었다. 시골 읍에다 만 군데에 불을 붙인다고 생각해 보라. 갑자기 확하고 돌까지도 재로 만드는 불을 붙인다고 생각해보라. 더구나 보통 건기에 나타났다. 건기에 나타나서 안개가 스며들 듯이 도시에 스며들어서 갑자기 불 지르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물로 도망가 버렸다. 땅으로 도망가면 흔적이 남는다. 자취가 없었다. 추적하다보면 강이나 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나온 흔적이 없다. 추적 범위가 수백 킬로미터 였음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다. 배를 이용했는지 땅 속 동굴을 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중 기원전 1000년 경에 대규모로 병력을 만들어서 추적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스키타이가 만들어 진거다. 그들의 본거지를 찾으러 온 대륙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찾은 그들의 본거지가 우랄 산맥 근처다.      




<스키+타+이 : 스키는 시키의 발음이 변화한 것이다. 타는 싸우다란 뜻이며 이는 사람을 말한다. 시키와 싸우는 자들이란 의미다. 타이를 높은 산이라 해석하는 자들도 있던데 아니다. 타는 지금도 타격이란 말로 남아있고, 시키도 우리에게 주요한 욕설로 남아있다. 욕 중에서 가장 심한 욕이리라. 주의하자.>




사람들은 스키타이가 잔인하다고 한다. 거기에 있는 동물이건 사람이건 싹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후에나 공격이 멈췄다. 그래서 스키타이가 잔인하다고 하는 거다. 이렇게 될 때까지 200년 가량 공격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청동기 문명이 사라졌다. 당시 문자도 사라졌다.           




청동기 당시에 문자가 만들어 진 이유는 사회적 유지를 위함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위함이었다. 무역 네트워크. 다른 지역과의 정보교환, 상거래를 위함이었는데 이게 끊어졌다는 의미다. 서양 내부에서의 무역도 끊어졌지만 초원길을 통한 동서교역로도 사라졌던 거다. 고조선의 쇠퇴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때부터 언제 다시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곽 중심의 군사 국가가 대거 등장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들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 시기다. 제대로 된 역사시대의 시작이다. 국경이란 걸 만들고 수도를 만들어서 상비군을 두게 되었다.      




고조선도 처음엔 국가란 개념보단 영향권 이었고, 아사달과 왕검성이 무너지고 한동안 혼란기가 있었다. 그런 후 평양성이 만들어졌다. 평양성은 군사기지였다. 평양은 부여나 마한 그리고 예족, 맥족, 유목민족에서 군사를 착출했다. 이 중 뛰어난 군사 역량을 보인 게 특히 맥족, 구려족, 동호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루(LU)’ 였던 사람들이 점점 힘이 생기고 나중에는 이들이 국가를 세웠던 것이다. 그 전에는 군사국가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루가 국가를 세우는 게 없었다. 그들은 그냥 부족이었다. 근데 군사 중심의 활동이 이어지면서 ‘아 저렇게 국가 만들면 되는 구나’. 이게 지금 시대의 시작이다.






이걸 생각하니 일본이 미워진다. 일본이 가진 송곳니 덧니 치아가 바로 시키족의 특징이다. 가미가재도 연결된다. 되게 어둡고 음침하게 계략 세우는 것도 동일하다. 한국인들도 사랑니가 있다. 그게 그들한테 당했던 흔적이다. 아느계 사람들의 유골을 보면 앞니에서 어금니까지 모든 치아가 동일하게 생겼다. 드라큐라가 사람 피 마시는 게 이들의 흔적이다. 시키족들은 싸우다 힘들어지면 사람 목 베어서 피를 마시곤 했다. 그다음 배 째서 간이나 꺼내서 씹으며 싸웠던 거다. 인류한테 강력한 트라우마 남겼다.     




근데 기원전 1200년, 1000년의 기록은 우리 쪽에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집트나 이런 쪽은 수몰되진 않았기에 어느 정도의 흔적은 남았을 텐데 그렇게나 기록이 사라졌을까? 모든 게 다 타긴 했으나 그래도 약간은 남았을 텐데 왜 그리 흔적도 없나?     




문제는 서기 1700년대, 1800년대 제국주의다. 그 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칼 유럽쪽 제국주의 국가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고고학적 자료를 싹쓸이 했다. 루브르나 이런 쪽에도 전시하는 것보다 전시 안하는 게 훨씬 많다. 인디아나 존스, 도둑놈이다. 18세기에 프랑스 귀족이 원강석굴에 가서 석굴을 지키는 이에게 우리나라 돈으로 20만원 정도 주고 그 안의 책과 유물, 1만개를 빼돌렸다. 탐험가란 이름으로 사회적으로 면책을 받았다. 이 소문을 들은 유럽인들은 깡패를 데리고 와서 그 안의 벽화 등 모든 것을 훔쳐갔다. 보관하는 법을 모르니 가져가는 동안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이게 전 세계를 휩쓸었다. 장장 300년 동안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이 짓 따라했다. 유럽의 짓을 미국이 따라하고 또 이를 일본이 따라 했던거다. 유럽이 일본을 함부로 공격 못하는 이유가 자기들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선진국들 중에서 한국 빼고 거기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어디 있나? 하나같이 살육과 약탈을 통해 선진국이 되었다 보니 걔들이 만든 대중문화도 살육과 약탈에 기반 한 거다.           




다시 기원전 1200년 으로 돌아가서, 도시 내부의 사람들은 다 죽었다.     




문화 창달자들은 대부분 다 죽었다고 봐야한다. 사냥 나갔던 이들이나 농민, 어민들 일부가 살아남았을 터이다. 어린애들이 빼돌려 졌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혈통만 남았지 지식은 모두 사라졌다고 봐야한다. 우리도 마그나 사흐들 대부분 돌아가셨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지식이 모두 사라졌다. 단지 순혈이란 게 조금 남아있는 것 뿐이다.          




유물들 남아있는 게 그 이후에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물이란 게 발굴되어야 유물이다. 그 도시들은 모두 사라진 거다. 그 도시들이 있던 땅은 생명력이 모두 사라졌다. 그 땅으론 벽돌도 만들지 못했고 식물은 키울 수 없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도시를 만들었다. 버려진 땅은 결국 땅 속에 묻히게 되었고, 지금껏 버려진 채로 잊혀져 있다.



 새로운 도시를 기반으로 해서 역사가 흘러왔고 사람들이 대도시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도시 파다가 나오는 유물은 기원전 1000년 이후의 것들이다. 기원전 1000년 이전의 것들은 거의 없다.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기원전 1000년 이전의 도시들은 아직도 땅으로 되어 있는 상태다. 발굴자체가 되지 않았다. 버려진 땅이다. 버려진 땅의 어느 곳에 유적이 있다. 근데 그 유적은 녹아버린 돌로 덮혀 있으니 발굴은 쉽지 않다. 뭐 언젠가는 발굴될 수 있겠지만.     


홍산문명, 괴베클리테페가 발굴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발굴될지 어떻게 알았나.     



     

그런데 닝구르는 방어를 했다? 


닝구르는 숨겨진 곳이다. 닝구르, 개발무사, 무사는 모두 숨겨진 곳이다. 그래서 괜찮을 수 있었다. 그 때 당시에 아느계 사람들도 믿을 수 없었기에 중간지에서 접선하는 방법을 사용해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었다. 닝구르의 중간지는 아사달이다.     




그럼 아사달과 왕검성 정도만 알려졌던가?


아니다. 한반도, 만주 인근의 도시가 2천개가 넘었다. 왕검성이 최대 70만명 규모였고 다른 큰 도시도 삼사십 만명은 충분했다. 물론 작은 도시는 1천명 정도 규모도 있었지만. 여기에도 도시가 상당히 많았다. 비록 닝구르는 숨겨진 도시였으나 다른 많은 도시들은 공격당했던 것이다.     




문명의 리셋이라고 하는 거다. 기원전 천년대에 모두 초기화되었다. 그러니깐 문명의 기반 인프라가 모두 지워졌다보니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역사책에서는 한반도 역사는 기원전 천년부터 시작 되었다 라는 말이 생긴 거다. 어마어마한 학살이었다.     




시키와 회화족은 다른 개념이다. 회화족은 루 개념이다. 루란 시키의 피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부여족의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회화족은 아느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았기에 공격받을 일이 없었다. 기원전 1200년대이니깐 주나라는 있었으나 막 생긴 상황이다. 삼묘족은 그 이전에 회화족에 의해서 멸망 당했었다.          




이 일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이루어졌던 거다. 아메리카는 상관없다.       


   

그런 후 기후변화가 이루어졌다. 굉장히 많은 지역이 스텝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그 와중 너무나 많은 숲이 사라졌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게 기후변동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러고 보니 왕검성 하부에 원유가 있었으니 왕검성 무너질 때 엄청난 화염에 휩싸였을 것인가?     




그렇다. 그 당시 동북아 이쪽은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검은 연기가 온 지역을 덮고 있었다. 원유가 불 붙었으니 불길이 잡히는데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렸다.   


   

그럼 왕검성과 같이 원유 위에 있었던 도시가 있었던가?     


우르크도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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