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임 Jan 29. 2022

BC 267, 고조선 당시 쓰여진 기록,홍사(鴻史)

한민족의 시작,

고조선 당시에 쓰여진 기록,


     홍사(鴻史) 동이열전(東夷列傳)


작성시기 : BC 267                                              작성자 : 공빈(孔斌 : 공자의 7대손)



춘추 전국시대 위나라의 역사서인 홍사에서는 공자의 7대 손인 공빈이 당시 대국이었던 조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공빈은 조선은 기원 전 23세기 이전에 성립되었고, 그 후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이 조선의 가르침으로 나왔으며, 기원 전 14세기 전후부터는 중국의 백성들이 동이족을 따라함으로써 중화가 열였다고 말하고 있다.


 공자도 공빈도 동이에 가서 살고 싶었지만, 동이는 대국으로 더럽고 남루한 자가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닌지라 가지 못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강국으로의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근세 시대 조선의 사절단을 맞이하여 문화와 문명을 전래받던 일본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위나라의 동쪽에 오래된 나라가 있어 동이라고 불렀다.


星分箕尾 地接鮮白

별자리 28수 중 기성과 미성 방향이 있었고, 땅은  ‘선[i]’과 ‘백[ii]’에 접해 있다.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竝立

신적인 인간을 나타내는 단군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아홉의 이족이 따르고 호응하여 지배자로 인정하니, 그 시기는 중국의 요임금과 비슷한 시기였다.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중국의 요임금을 이은 순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들어 와서 천자로써 다스렸는데, 모든 왕 중 가장 뛰어난 통치자셨다.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자부선인이라는 학문에 통달한 존재가 있었는데 그 지혜가 인간을 초월하였다. 중국 황제 헌원씨가 자부선인이 운영하는 임금이 되고자 하는 자의 정신세계를 가르치는 내황문의 문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아 염제 신농씨의 대를 이어 중국의 제사장겸 지배자가 되었다.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동이에 소련이라는 사람과 대련이라는 사람이 있어 상을 당함에 삼일간 슬퍼하고 삼년을 추모하고 애통해하니 공자께서 칭찬하셨다.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하나라의 우임금이 도산에서의 모임에 단군 부루 임금이 친히 오셔서 양국의 경계를 정하셨다.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단군 부루는 하늘에서 나신 성인으로 그 영명함이 중국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윤은 그의 문하로 공부하여 은나라 탕왕의 현명한 재상이 되었다.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그 나라는 비록 컸지만 스스로 잘난 체하거나 뽐내지 않았고, 그 나라는 비록 강하였지만 사람들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풍속은 순후하였고, 길을 걸을 땐 서로 양보하였고, 음식을 먹을 땐 서로 미뤄줄 줄 알았고, 남녀가 각기 다른 곳에 거처하였으며 함부로 같이 앉지 않았다.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가히 동방의 예의가 바른 군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 했다.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그래서 은나라의 태사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고 조선을 마음에 두었다가 동이의 땅으로 거처를 옮겼다.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공자께서도 동이에서 살기를 욕심 내었으나 누추하여 이루지 못 하였다.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공자는 나의 벗 노중련도 역시 동쪽 바다 건너에 있는 동이에 가 볼 것에 뜻을 두고 있었다.


余亦欲居東夷之意

나 공빈 역시 동이에 머물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왕년에 동이의 사절이 와 자세히 살펴보니 그 거동과 모습이 대국인다운 금도를 지니고 있었다.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동이는 천년 이상 중국을 꽃 필 수 있게 도와 주었고, 서로 우방으로의 의를 가져왔다.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인민이 서로 서로 오가고 거주하며 지냈고, 동이인이 중국에 거하면 끊임없이 접대하고 따랐다.


吾先夫子 印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공자는 더럽고 누추한 자는 동이에 자리잡을 수 없고, 그 뜻을 펼 수 없다고 하였다.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그래서 나 역시 그 느낌과 정을 후인을 위해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위나라 안리왕 10년 곡부 공빈 씀



          



[i]선(鮮)이란 아름다운 물고기와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던 곳을 의미함. 즉, 지금의 요하문명의 발굴지에 있는 낮은 산악 성곽 지역을 나타냄.


[ii]백(白)이란 흰색 옷을 입고 제천행사를 하던 닌구르를 나타냄.

작가의 이전글 한단고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