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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임 Feb 22. 2022

한복은 조선의 옷이다.

한민족의 과거

지금 사회는 패권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패권주의를 추진한다.





패권주의는 어떤 사소한 빌미가 있어도 자기들 원하는데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잡은 빌미는 규정 보다는 심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활용된 영국 심판은 이번 올림픽 후 은퇴다. 그놈은 돈만 받으면 된다. 그놈한테 중국은 명예를 더럽힐 빌미를 댓가로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영국 심판이 잡은 빌미는 하나의 중국쪽 영상이었다. 쇼트트랙 영상의 많은 영상 중 한 개 영상을 기반하면 패널티 선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키스신 찍을 때 카메라 각도만 살짝 돌리면 키스 안 했어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쪽 화면은 보면 접촉이 없었으나 중국쪽 화면을 보면 접촉 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이용하고 심판의 재량권을 접목하면 한국을 탈락시킬 수 있는 거다.     




올림픽 첫날, 중국은 3개의 금메달을 땄다. 어떤 비리를 저질렀던 3개나 되는 금메달을 땀으로써 중국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2차대전 직전 히틀러는 올림픽 첫날 모든 종목에서 아리안인들이 금메달을 따게 했다. 그렇게 되게끔 조작을 했다. 이게 패권주의자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민주주의자에서는 처음엔 못났으나 노력해서 잘되면 된다. 하지만 패권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에도 잘하고 나중에도 잘하고 결과적으로도 잘해야 한다. 그래야만 절대화되기 때문이다. 넘사벽이 되길 원하는게 패권주의자들의 특징이다.     




내가 하는 말에 토 달지 마라. 이게 패권주의자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쇼트트랙 판정에 시비를 걸자, 중국 입장에선 매우 기분나쁜 일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속국론을 주장했다. 주변나라들은 자신의 속국이다. 일대이로를 통해 더 많은 속국을 만들어야 한다. 속국은 대국의 필요에 의해 언제나 대국이 필요한 패권이나 정치적 요구에 의해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전쟁하라 하면 전행해야 하고 지도자 바꾸라 하면 바꿔야 하고 뭘 달라고 하면 줘야 하는게 속국의 입장이다. 조선은 사대국이지 속국은 아니었다. 다만 반정이 있었을 때는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임금이 될 수 있었지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얀마 사태를 보라. 군부가 정권을 잡았으나 이를 인정해 주는 나라가 없으니 실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북한을 보라. 김정은이 권력 잡은지 오래되었으나 세계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빌미만 있으면 걸고 넘어지는게 중국을 포함한 패권주의자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논리 같은 건 필요없다. 지리한 논리 싸움에서 설령 패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빌미를 이용해 현 상황 목적말 당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를 한복에 대해서도 취하고 있다.



한복은 어느 시대 양식인가?



고조선의 옷이다.

고조선의 명칭을 이어 받은게 조선이다.



한복은 조선의 양식이다. 부여나 마한은 그 양식이 달랐다. 두루마기가 조선의 것이며 부여는 바지와 흰색이 특징이다. 11자 바지, 몸빼바지가 부여의 양식인데 반해 조선은 기본적으로 치마다.



현재의 한복은 부여와 조선의 결합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조선의 양식이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에 들어서며 복식이 매우 국제화된다. 매우 다양해진 복식을 단순화 했던 게 조선의 양식이다. 3대 태종 때부터 시작하여 9대 성종 때 완성되었다.




고려의 문제가 뭐냐면 옷에다 돈을 너무 썼다는 거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의 경우 옷과 장식을 다 합치면 왠만한 집 한 채 값이었다.     




고려말의 기록 중 이런게 있다. 귀족의 와이프가 입은 옷을 팔면 군사 4천명을 양성할 수 있다.     




비싼 옷의 경우 먼저 한반도에서 비단을 만든다. 이 비단이 비잔틴제국으로 가서, 금실로 수를 놓고 장식을 한다. 이게 이란에서 보석들 세공해서 달았다. 그런 후 중국에서 추가 염색을 한 다음 고려가 수입했다. 이거 한 바퀴 도는데 이삼년 걸린다. 옷 한 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다. 이게 고려말 유행했다. 페라리니 해서 비싼 수입차들 아무것도 아니다.     




조선 태조 때 권력을 잡았다. 권력을 잡은 부인들, 이런 옷을 입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두 번이나 반란을 치뤘다. 군사를 양성해야 했기에 아내의 욕심을 들어줄 수 없었다. 옷 한 벌에 군사 4천명인데, 어찌 수입옷을 입게 하겠는가? 근데 자기 와이프도 그런 옷 못 입게 하는데 다른 귀족들이나 밑에 있는 하녀들이 그런 옷을 입게 할 수 있겠나?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와이프가 옷 사입는답니다 라고 돈 받아놓고선 그걸로 군대 양성하고 활, 칼, 창 만들었던 것이다. 옷 한 벌 값만 받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사주는 옷인데 겨우 한두벌 값이겠는가? 자기 형 앉혀놓고선 더더욱...     




군사 한명 양성하는데 천만원 든다고 하자. 돈의 가치는 다르지만 지금도 군사 한명에 천만원은 너무 적은 예산이다. 사천명이면 사백억원이다. 옷 서너벌 값을 받았다면 그것만 해도 천억원은 호가한다. 이정도 돈을 군사 양성하는데가 아니라 옷에 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 맞다.     




태종이 왕이 되었을 때는 이미 몇십년간 준비가 있었다. 그 사이 복식에 대한 간소화 정책은 이미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수입옷 입는 것 금지였다. 전쟁에 쿠데타가 있는 상황이던터 왕실에서 수입옷 금지했고, 무역항이라곤 2개 뿐인터라 이곳만 막으면 바로 차단이었다. 수입옷 풍토는 금방 사라지게 되었다.     




고려 때 비단 아무리 팔아봐야 수입옷 몇 벌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고려말은 적자였나? 그렇지도 않다. 고려말 당시는 매번 흑자였다. 고려풍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한류는 여러번 있었다. 첫 번째 한류가 고조선의 한류다. 기원전 1000년에서 고조선이 망할 때까지 고조선은 문화강국이었다. 두 번째 한류가 백제한류다. 그 흔적이 쿠다라이다. 큰나라 라는 뜻이다. 세 번째 한류는 통일신라 한류다. 실제는 백제 사람들에 의한 것이긴 하나 통일신라는 황금의 제국이었다. 네 번째 한류가 고려풍이다. 고려풍은 원나라 초원길을 통해 유럽까지 퍼졌다. 다섯 번째 한류는 조선후기다. 조선한류는 일본으로 퍼졌다. 그리고 지금이 여섯 번째 한류다.




이 중 고려한류는 120년 가량 지속되었다. 고려한류 때 고려에서 나오는 옷이던 종이던 먹이던 고려것이라고 하면 부지기수로 팔려나갔다. 고려문양 새겨진 것이 폴란드까지 수출되었다. 당시 자기는 그리 알려지진 않았다.     




문제는 너무 빈익빈부익부였다는 것이다. 고려 때 고관대작 한명이 경기도와 황해도 전체를 개인 재산으로 가질 정도였다. 몇 개 가문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라 질문한다면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들 지금 노비인가? 당시 고려말에는 대부분 노비였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양민으로 바뀌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양민이 되는 걸 꺼려했다. 양민이라 함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의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도 권력자가 알아서 명령내리시면 무조건 따를께요. 나한테 많이 챙겨주세요. 라고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 시절에는 오죽했겠나?




조선이 건군 후 유교를 강화시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있다. 국민들의 의지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 읽어야 하고, 출입 시 부모님께 격식을 차려 인사를 드려야 했다. 지금도 외국인들은 하루 두 번 세수하는 한국인들을 신기해 한다. 우리는 기본이다.




고대 중국인들 기록을 보면, 한국인들은 매일 하얀색 옷을 입는데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라고 했다. 유교에서 공식적으로 목욕하는 건 평생 5번이다. 태어났을 때, 성인식 때, 부모님 돌아가실 때 2번, 자기 죽을 때 한번,



어떻게 하얀색 옷 입고 있으면서 저렇게 깨끗할 수가 있어? 말이돼?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에선 기사들 옷 한번 입으면 죽을 때 까지 안 벗는다. 그래서 향수가 발달했다.



지금도 서구인들 한국 찜질방 가면 난리가 난다. 매일 때 벗기는 건 우리는 일상이지만 거기는 중독이라 표현한다. 그 쪽 문화에선 비와도 우산 안 쓴다. 목욕할 기회이니깐.






다시 한복으로 돌아가면, 북한은 조선이고 한국은 한국이며 KOREA이다. 고려다.

이에 우리는 북한와 남한이라 하고 북한은 북조선과 남조선이라 부른다.




중국이 찾은 빌미가 바로 이거다.



한복은 조선의 옷이라는 것이다.

한복을 조선의 것이지 한국의 옷이라 하지 않는다.




이에 중국은 한복의 사용권을 요구한다면 북한한테만 권한이 있는 거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동북공정의 한 바탕이다.



빌미를 반박할 논리, 있는가?

대한민국이 조선을 이어받았다라 주장하지만 북한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은 KOREA라 부른다. 만약 역사가 사라진다면 북한이 조선을 이어받았고, 남쪽에서는 고려 부흥세력이 반란을 하여 다시 남북국시대가 열렸구나 라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가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한이다.




한의 의미를 아는가?

한의 뜻을 아는가?

한의 기원을 아는가?




왜 우리가 한민족이어야 하는가?




모른다면 중국의 억지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한복 역시 중국의 것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고?



한족은 누군가?  

한나라는 어디인가?

치우천왕이 삼황오제에 포함되어 있는가?

유교는 도교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회화족의 창조신인 여와복희는 어디 사람인가?

한자는 애초 어디에서 만든 글자인가?

비단길 이전의 초원길은 누가 만들었고 누가 운영하던 길인가?

중국 대습지를 해결한 우임금은 누구인가?

중국의 상나라(은나라)는 누구이던가?

갑골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요하문명은 어디에 기반하고 있으며 홍산문명은 왜 기원전 7000년대의 기록이 남아있는가?

왜 만리장성 보다 훨씬 북동쪽, 만주에 세계 최대 피라미드 군락지가 있으며, 중국은 이를 은폐하는가?

왜 중국인들은 산둥반도의 제나라 역사를 제대로 발굴하지 않는가?




천년이 지나면

한복도 BTS도 김연아도 중국의 것이 될 수 있다.





한의 의미를 다시 짚는다.

한은 한, 하란, 메르, 부르에서 나온 고대어다.

1만년 전 아느에서 동, 서, 남, 북을 의미했다.



그리고 애초 단군이 세운 나라는 아사한이며 아사달에서 준비하여 왕검성을 지으셨다.

아사한을 한자로 쓰면 조선이 된다.



그리고 아사한 사람들과 미리 한반도에 들어와 있던 마한사람, 그리고 부여사람 모두를 합쳐서 삼한이라 불렀다.



삼한일통론이 애초부터 과제였고 그들의 후손이 현재 한민족이이다.



조선이건 고려건 상관없이 모두가 한민족으로 계승되었고, 이들이 입은 옷이 한복인 것이다.



흙탕물에서 태어나 땅 속에서 먹고 자고 다시 흙으로 되돌아갈 회화족의 의복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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