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아이

#1 육아 중 다시 만난 나의 내면아이

by 하니맘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내 안의 어린 나를 돌보는 과정이다.


내가 자란 포항은 남쪽 도시였다. 눈이 잘 내리지 않았다. 그날은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조용히, 하얀 눈이 쌓였다. 나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의 세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심했다. 오늘은 놀이터로 나가야겠다고.


나는 좀처럼 놀이터에 나가지 않는 아이였다. 혼자 책을 보며 노는 게 익숙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았다. 가끔 다리를 다치거나 엄마에게 놀이터 출입금지령을 받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면 내심 반가웠지만, 그 친구가 다시 놀이터로 돌아가버려도 나는 조금 쓸쓸해하다가 조용히 다시 책장을 넘겼다. 그런 내가, 그날은 처음으로 스스로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나를 홀린 듯 밖으로 불러냈다.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눈밭 위에 내 발자국이 처음 찍혔다. 손이 시렸지만 신이 났다. 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긁어모으다 보니 흙이 섞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만든, 작고 꼬질꼬질한 눈사람 하나. 내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눈사람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려면 엄마와 카메라가 필요했다. ‘혹시 다른 아이들이 내려와 내 눈사람을 부숴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불안함을 안고 10층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엄마, 빨리 와!” 콩닥대던 심장박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놀이터에 다시 내려갔을 때, 눈사람은 없었다. 눈은 흩어져 있었고, 아이들이 그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놀고 있었다. 그들은 신나 보였다.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무너진 것 같았다. 엄마는 “다른 친구들도 눈을 가지고 놀고 싶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도 머리로는 알았다. 놀이터의 눈을 다 긁어 쓴 건 나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쪽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내가 처음 세상에 보낸 인사가 철저히 외면당한 기분이었다.


그 일은 오래 남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그 일을 떠올리면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민망하지만, 그땐 진짜 그랬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 자신을 위로하기를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 아이는 그 놀이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어느 날 하니의 그림책에서 실수로 친구의 블록을 부순 이야기를 보았다. 아이는 “미안해”라고 말했고, 친구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 순간, 문득 그날의 눈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나의 상처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누구나 미숙하고 불완전하고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하니가 친구에게 실수한다면, 친구가 하니에게 실수한다면 나는 그저 다정하게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미안하다고 말하자.” 그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서 그 말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아마 그날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미안해. 네가 눈사람이랑 사진 찍고 싶어 하는 줄 몰랐어. “ 지금의 나는 그날의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안해. 그때 네가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어서.” 그리고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괜찮아. 이렇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하니를 안아주며, 그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함께 안아준다. 이제는 그날의 기억이 아프지 않다. 그때의 아이가 아직 내 안에 있다는 게 오히려 다정한 위로가 된다.


누구나 소중한 무엇이 발견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상처받은 아이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말을 건네보자. “미안해. 그리고 괜찮아.”라고. 그 아이가 오히려 나의 삶에 다정한 위로로 남아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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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