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딩크족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누군가는 순하게, 누군가는 격렬하게 살아간다. 그 조각들이 남아있는 한
그들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닐지 모른다.
한때는 딩크족을 자처했던, 그리고 슬그머니 이를 철회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출산을 주저하던 내가 하니를 가지기로 결심한 데에는 최갑순 씨의 영향이 컸다.
최갑순 씨는 나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름처럼 순한 사람이었다. 아니, 순할 수밖에 없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1929년 2월생. 학교는 돈이 없어 가지 못했고, 산길을 걸어 유리창 너머로 교실을 보던 게 전부였다. 그렇게 글자도 배우지 못한 채, 술에 취해 상을 엎는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 그래도 참고, 견디고, 밥을 지었다. 남편은 첩과 함께 살다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는 첩과 함께 그의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요양원 로비에서 잠시 만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 같았다. 작고 가벼워진 몸, 반가움과 슬픔이 섞인 눈, 오랫동안 잘라주는 사람이 없었던 듯 길고 두껍게 자라 있는 담요 아래 발톱이 그랬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까지 순했다.
2022년 12월,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는 자식과 손주, 그 배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식들의 삶은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반이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았다. 대기업을 다녔던 우리 아빠가 ‘그나마 성공한 축’이었지만 먹고살기 바쁜 것은 매한가지였다.
손주들의 삶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는 공학 박사가 되었고, 누군가는 목수가 되었고, 누군가는 스페인에서 민박집을 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험하며, ‘순한 사람’에 머물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평생 숨소리 한번 크게 못 내고 살았던 갑순 씨의 입장에서는 언감생심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최갑순 씨는 끝까지 순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 가능성은 손주들의 삶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구나. 그 조각조각이 여전히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있구나. 갑순 씨는 죽었지만,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구나.
그때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나와 남편의 조각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우리의 조각을 담은 우리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 아이의 아이는? 그리고 내가 지켜보지 못할, 그다음 세대는? 그렇게 갑순 씨의 삶은 내가 하니를 갖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니가 태어나고 여섯 달쯤 흘렀을 때, 우리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뵈러 현충원에 갔다. 묘역에는 수많은 망자들이 모셔져 있었다. 각각의 묘비에는 계급명, 이름, 생몰연월과 장소, 그리고 가족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누군가는 장수했고, 누군가는 단명했다. 누군가는 배우자를 앞세웠고, 누군가는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가족은 단출했고, 누군가의 가족은 다복했다.
그렇게 찬찬히 여러 묘비를 읽어가다가 육군 일병 강두원 씨의 묘비를 발견했다. 할머니와 같은 해, 1929년에 태어난 그는 1951년 6·25 전쟁 중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인제지구에서 전사했다. 배우자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 은표 씨를 남겼고, 은표 씨는 2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 은표 씨의 장녀인 미정 씨는 마이클과 결혼해 테오도르를 낳았다.
스물두 살에 멈춘 강두원 씨의 조각은 바다를 건너,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을 낯선 이름의 아이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으로 멈춘 생이, 대륙을 넘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외사촌, 그러니까 은표 씨의 아들 환수 씨의 딸 채이는, 테오도르와 조부 은표 씨, 그리고 증조부 두원 씨의 조각을 나누어 갖고 있다. 그들은 같은 이의 조각을 품고,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덕분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은표 씨의 사위 마이클과 며느리 보라 씨도 가족이 된다.
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쩌면 전 인류는 한쌍의 부모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수많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인류애란, 어쩌면 형제애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날 나는 그 묘비 앞에서 깨달았다. 내가 품에 안고 있는 하니는 나의 조각만이 아니라, 인류의 조각을 품고 있음을. 내가 인류라는 커다란 나무에 하니라는 연둣빛 새순 하나를 틔워냈다는 것을. 그렇게 나와 남편도 조금 더 단단하게, 이 세계의 한 부분으로 연결되었음을.
*이 글에 등장하는 강두원 씨 가족의 이름과 관계는 실제 가족을 바탕으로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육아에세이 #감성에세이 #하니맘에세이 #다정한조각들 #엄마될결심 #출산결심 #딩크에서엄마로 #가족 #세대 #인류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