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육아휴직 중 질문, 나는 어떤 토마토인가?
누군가는 소를 키우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나는 어떤 토마토일까?
“나는야 주스 될 거야 (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 (찌익) 나는야 춤을 출 거야 (헤이) 멋쟁이 토마토!”
하니와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다 문득 멈췄다. 케첩이 되어도, 주스가 되어도, 춤을 추어도 멋쟁이라니, 너무나 너그럽고, 아름다운 선언이잖아.
문득 생각했다. 나를 토마토에 비유한다면 어떤 토마토일까? 케첩과 주스처럼 ‘목적과 쓰임’이 중요한 실용파일까, 아니면 춤추는 토마토처럼 ‘좋아하는 일 그 자체’가 중요한 낭만파일까. 실용파라면 밀도 높은 케첩일까, 목 넘김이 편안한 주스일까.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지독한 케첩이었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빈 소원은 ‘학력고사에서 올백을 맞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중학교 1학년 시험 기간에는 델리스파이스의 신보 한 곡을 듣고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이지 실용이 낭만을 압도하던, 밀도 100%의 케첩이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고 서서히 춤추는 토마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즐거운 덕질과 서툰 연애로 시작된 낭만의 틈은 대학생이 되고 취직을 하며 술, 자전거, 캠핑, 테니스 같은 것들로 점차 확장되었다.
한동안 일터는 나의 춤추는 삶을 지탱하기 위한 도구라고만 생각했다. 주스처럼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어울리고, 사고 치지 않고, 그러고 월급을 받으면 그만이라 여겼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허전했다. 어린 시절의 케첩 기질 때문이었을까. 일터에서도 더 열심히, 더 멋지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춤추듯 몰입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불안함 속에서 나는 남들을 기웃대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기적처럼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성공한 사람들 — 이를테면 아이유나 나영석 PD, 봉준호 감독 같은, 올려다보기도 목 아픈 ‘상위 0.01%’의 삶을 질투했다. 가까이에서는 친구와 동업해 감성 카페를 차리거나, 자신의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어 팔거나, 인스타그램에서 육아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아가는 선후배·동기를 보며 초조해했다.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했다. “다들 멋진 일만 하려고 하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누군가는 무대를 정리하고, 조명을 켜고 꺼야 할 것 아니냐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적당한 주스’의 자리를 자처했다.
하지만 육아휴직 기간 한 발짝 떨어져 돌아보니, 나는 일터에서도 ‘적당한 주스’이지만은 않았다. 조직이 주목하지 않는 일을 했을 뿐, 춤추는 토마토의 마음으로 애정을 품고, 케첩의 마음으로 몰입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소를 키우고 무대를 정리하고 조명을 켜고 끄는 일도 누군가의 애정과 열정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주스의 마음으로 나 자신을 지키고 에너지를 비축한 적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이 다칠까 봐 ‘적당한 주스’인 척 위악을 부린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주스이기만 해서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또 소만 키워서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무대 위로 나서 춤도 춰야 하는 사람이다. 상처받을까, 비웃음 당할까 무서워 ‘적당한 주스’인 척해선 행복할 수 없다. 지치면 잠시 주스 모드로 쉬어 가도 좋지만, 케첩처럼 성실히 소를 키우는 것도 좋지만, 무대 위에서 춤추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 것이다.
내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이 말을 건네준 나 자신에게 화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질투하고 동경하던 아이유, 나영석, 봉준호처럼, 자신만의 길을 용기 있고 성실하게 개척해 가던 선후배, 동기들처럼 나에게도 나의 무대를 허락하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케첩과 주스와 춤추는 토마토의 삶을 넘나들며 살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삶이 괜찮다고, 어떤 모습이든 다 멋지다고 말해주는 ‘멋쟁이 토마토’ 노래가 유난히 다정하게 들리는 이유다.
하니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네가 주스여도, 케첩이어도, 춤추는 토마토여도 괜찮아. 네 마음의 소리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토마토라도 너는 멋진 토마토가 될 수 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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