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요알못 초보 엄마, 냉동실에서 사랑을 해동하다
조리원에서 생선 반찬이 나왔다.
‘이제 생선은 발라먹을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귀차니스트다. 요리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타고난 에너지 레벨이 낮아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고 믿었고, 요리는 늘 나의 우선순위 밖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쭉 자취를 했지만, 계란 프라이 하나 제대로 못 했다. 어느 날 신혼집에 놀러 온 친구가 계란 프라이 하는 법을 알려주다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넌 대체 뭐 먹고살았니?”
내 끼니는 주로 배달 음식이 책임졌다.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번갈아 주문하며 나름의 건강을 챙겼다. 요리는 손님이 올 때만 했다. 유튜브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사 먹는 것보다 재료비가 더 들었다. 요령이 없어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한 번은 ‘그릭 샐러드’를 만들어보겠다고 세 시간을 썼다. 오래 서 있으면 발바닥이 아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고기를 굽지 못하는 건 나의 오랜 아킬레스건이었다. 고깃집 회식이 잡히면,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곳인지부터 확인했다. 언젠가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크게 싸우고 친구와 갈매기살을 먹으러 갔다가 까맣게 태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선이나 게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누군가 발라주지 않으면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아기를 낳고 조리원에서 생선 반찬을 보고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제 생선은 발라먹을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기설기 생선을 발라먹으며 문득 깨달았다. “36년간 회피하던 문제를 스스로 마주하게 되다니, 이런 게 사랑인가?”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진 않는다. 야심차게 시작한 모유 수유는 겨우 한 달 버텼다. 워낙 양이 작긴 했지만, 새벽 수유를 부지런히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유식도 첫 흰 죽을 빼고는 시판으로 해결했다. 요리 바보인 내가 만든 비슷비슷한 이유식보다 다양한 유기농 재료로 만든 시판 이유식이 아기에게 더 좋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다 마침내 유아식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침은 가볍게 이유식을 주고, 점심은 어린이집에서 주지만 저녁은 결국 내 몫이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유튜브를 뒤졌다. 유명 소아과 의사의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메모했다. 밥은 90g, 현미가 섞인 진밥이 좋고, 단백질은 고기 또는 생선 30~40g, 두부와 계란은 수시로, 과일도 매일 주라고 했다.
햇반 현미찹쌀밥을 샀다. 한우 안심과 닭안심을 30g씩 소분해 냉동했다. 생선은 뼈를 발라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리면 되는 유아용 제품이 나와 있었다. 고마운 세상... 계란은 2~3개씩 삶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의사 선생님이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야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냉동 야채 믹스와 냉동 애호박도 샀다. 인기 아이템 무염 어린이 김도 구매했다. 이렇게 구비해 두니 나 같은 요알못도 15분 만에 4첩 반상을 차릴 수 있다.
챗GPT에게 이 식단이 어떤지 물었다. 시험지를 채점받는 학생처럼 긴장됐다. 답은 긍정적이었다. “하니의 식단은 14개월 기준으로 매우 이상적인 구조예요.”라는 답. 그리고 몇 가지 개선 포인트도 알려주었다. “불포화 지방이 부족합니다. 들기름을 사용해 보세요.” 같은 것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평일 유아식 루틴’이 완성됐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8첩 반상은 아니지만 다행히 하니는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기도 나도 행복한 유아식 식단이었다. 맛집을 잘 아는 것도 요리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큰 매력이듯, ‘최적의 재료’와 ‘쉬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정성이고 애정이라 생각한다. 큰 정성과 희생뿐 아니라, 나다운 방식으로 이어가는 일상도 분명 모성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자라고 있다. 매일 고기를 해동하고 굽다 보니 아킬레스건이었던 고기 굽기가 익숙해진다. 유아식뿐 아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어 번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 내가 하는 집안일의 전부였다. 지금은 로봇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고 세탁조를 청소한다. 냄새나는 수건은 베이킹소다를 넣어 세탁하고, 하니 이불도 2주에 한 번씩 빨아준다. 돌돌이는 수시로 돌리고, 손은 하루에도 수십 번 씻는다.
하니에게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주려 시작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나의 자리도 깨끗해졌다. 그 덕분일까? 잊을만하면 한 개씩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성인 여드름도 자취를 감췄다.
깨끗해진 집에서 냉동고를 정리하고 소분해 둔 고기를 볼 때면 이상하게 뿌듯하다. 맛있게 밥을 먹는 하니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고마워, 하니야. 네가 일반식을 먹을 때쯤에는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일 줄 아는 엄마가 될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유능한 엄마이자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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