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가 강남 나 홀로 아파트를 사지 못한 이유
한때는 나도 괴로웠다.
‘누구에겐 당연한 것이
왜 나에겐 당연히 주어지지 않을까?’
강남 한 동네의 나 홀로 아파트를 살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주변의 으리으리한 대단지 신축 사이에 자리한, 상대적으로 초라한 아파트였다. 지하철역은 조금 멀었지만 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역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오갔다. 강남 한복판인데도 조용했고, 산책과 자전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한강이 가깝다는 점도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파트를 사지 않았다. 아니, 사지 못했다. 하니가 신축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어 자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니가 “엄마, 왜 우리 집은 친구네 집보다 작고 낡았어?”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답은 할 수 있겠지만, 그 답에 하니가 진심으로 수긍하게 만들 자신은 없었다.
몇 달 뒤, 아파트의 매매가는 훌쩍 올라 우리의 예산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씁쓸한 마음을 부여잡고 오답풀이를 하듯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엄마, 왜 우리 집은 친구네보다 작고 낡았어?”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사실 이 질문은 한때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기도 하다.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나에게 허락된 자취방은 고시원 한 칸이었다. 침대 두 개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고시원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가난’은 비교 속에서 생겨난 마음의 결핍에 가까웠다. 대학등록금도, 용돈도, 월세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셨고,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으니까. 그럼에도 동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던 명품 가방, 학교 앞 오피스텔, 한강변에 반짝이는 아파트들을 보며 나는 분했다. ‘누구에겐 당연한 것이 왜 나에겐 당연히 주어지지 않을까?’, ‘아파트가 저렇게 많은데, 왜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을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오래 괴롭혔다.
그 시절의 나를 일깨운 건 유인경 기자가 쓴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의 한 구절이었다.
“부모와 하늘을 원망하며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고 잘 살려면,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겸허하게 불평등한 인생을 받아들이고, 행복은 옵션이고 불행이 기본이란 걸 받아들여야 평화와 진정한 발전이 온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직설적인 이 문장을 읽고서야, 나는 무고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나에게 주어진 행운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고, 큰 부족함 없이 자랐고, 우리 가족은 대체로 건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1989년의 한국에 태어났다. 그 하나의 사실 덕분에 나는 조선시대 왕도 매일 하지 못했던 온수 샤워를 아침저녁으로 할 수 있고, 북한에 소떼를 몰고 갔던 재벌 할아버지도 써보지 못한 스마트폰과 ai가 내 손안에 있다.
대한민국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한스 로슬링은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변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17년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인구가 10% 미만으로 감소했다.
언젠가 하니에게 불공평을 설명해야 하는 날, 나는 이런 기쁜 소식들도 함께 전할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하니가 알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불공평 속에도 숨어 있는 수많은 행운과 하니 앞에 놓인 선택지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언젠가 AI의 발전으로, 모든 인류가 노동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로마의 귀족처럼 사는 세상이 오진 않을까? 그런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깨닫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의 더 나은 하루를 위해 함께 애쓰고, 더 나은 미래가 도착하면 함께 누리고픈 가족이 있어 내 마음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는 걸.
물론 언젠가 또 이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사실 아직도 강남 나 홀로 아파트에서 하니를 키울 자신은 없다. 그만큼 세상의 불공평에 의연해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흔들릴 때마다 나는 다시 떠올릴 것이다. 긴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며 결국 앞으로 나아간 인류의 조상들과 그에 빚진 나의 일상을 그리고 오늘도 내 옆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나의 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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