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하는 엄마로 살아남기

#9 육아, 일, 그리고 나를 위한 제3의 공간

by 하니맘
테니스장에서 나는 엄마도 아니고,
회사원도 아니고
그저 30대 중후반의 테니스인이었다.


하니를 임신했을 때 나는 만 3년에 가까워져 가는 ‘테니스인’이었다.


테니스라는 운동은 꽤나 까다롭고 매우 중독적이다. 구기운동은 테니스가 초면이고 운동신경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타입인 나는 만 3년을 소위 ‘테친자(테니스에 미친 자)’로 보냈지만 ‘테린이(테니스+어린이)’를 완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오른쪽 사이드 스텝은 되는데 왼쪽 사이드 스텝은 영 안 되는 몸뚱이로 나의 피, 땀, 눈물을 모아 포핸드와 백핸드를 조립해 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드디어 테니스다운 테니스 좀 하나?’ 싶을 무렵, 아기가 생겼다. 나의 테니스 인생이 이어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이었겠지만, 내 대답은 ‘예스’였다. 나는 임신 7개월까지 테니스 레슨을 받았고 출산 7주 만에 라켓을 다시 잡았으며, 두 달 만에 테린이 대회장에 서 있었다.


물론 피곤하긴 했다. 복귀 초기에는 예전처럼 평일 저녁 레슨을 갔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무섭게 바통터치 하듯 나가야 했다. 하루 종일 하니와 씨름하다가 운동복 차림으로 직장인 가득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자면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싶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남편의 퇴근을 닦달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레슨은 20분인데 오가는 시간은 1시간이 넘는 상황도 힘들었다. 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게 낫지 않나? 아니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야. 네가 숨 쉴 구멍 하나는 열어둬야 해” 테니스를 관둘까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난 그 말을 붙잡고 테니스를 계속할 수 있었다. 테니스가 잘되는 날은 즐거워서, 테니스가 안 되는 날은 화가 나서 육아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레이 올든버그는 현대인에게는 집(제1의 공간), 회사(제2의 공간)가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3의 공간은 누구나 부담 없이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비공식적 공공장소를 말한다.


나에게는 테니스 장이 제3의 공간이었다. 테니스장에서 나는 엄마도 아니고, 회사원도 아니고 그저 30대 중후반의 테니스인이었다. 함께 게임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쌓고 경기하는 동안만큼은 모든 걸 잊고 눈앞의 공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육아에 함몰되지 않고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니와 함께 갔던 테니스장 휴게실에서

내 테니스 인생에 하니로 인한 변화도 당연히 있었다. 평일 저녁 레슨은 아무래도 육아와 병행이 어려웠다. 엄마 아빠가 하니를 봐주실 수 있는 주말 오전 타임으로 레슨을 옮겼다. 같은 시간대의 클럽도 가입했다. 엄마 아빠 덕분에 첫 번째 고비를 넘기고 나름의 안정적인 ‘주말 테니스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불안하다. 이 운동, 복직 후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삶의 균형, 지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의 답은 ‘아니요’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고비들을 넘고 넘어 하니에게 테니스 치는 엄마, 제3의 공간을 가진 엄마로 남고 싶다.


그리고 기대해본다. 언젠가 하니와 내가 코트 위에서, 테니스인 대 테니스인으로 마주 설 순간을.



#육아에세이 #감성에세이 #하니맘에세이 #다정한조각들 #제3의공간 #엄마의취미생활 #엄마의사생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