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일이 없어요

엄마이자 교사

by 봄날

올해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일 때만큼 드러내 반항하는 일은 줄었지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기분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아이는 요즘 한참 입시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실감하며 분투 중이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는 한없이 안쓰럽다가, 열심히 공부계획을 세우고 다짐한 지 며칠 만에 또다시 PC방을 전전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어른인 나도 머리로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른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오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그냥, 그냥 좀 그래요.”

“어제 실험 망친 것 때문에 그래?”

“아니, 그것도 그거고, 그냥... 요즘 되는 일이 없어요.”

열일곱의 인생에 되는 일이 없다니, 어쩌면 좋을까?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 온다. 내 시선을 회피하는 아이를 불러다 옆에 앉혔다.


“얘기 좀 해봐. 네가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으면 엄마가 맘이 편하겠니?”

“수행도 많고, 실험도 해야 하고,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학원 샘은 숙제 안 해 왔다고 때리잖아요.”

“뭐?”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학원 샘이 때려?”

“네, 숙제를 안 해오면 맞아야 된다고, 전부터...”

“근데, 왜 엄마한테 그런 얘기 안 했어?”

“그냥, 애들도 그런 얘기 안 해요.”

아휴, 이 철딱서니를 어쩌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맞았어?”

“아니, 맞기 싫다 했더니 남으라 그래서...”


자기 주도 학습이 중요하다고, 공부는 스스로 맘먹기 나름이라고,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내 자식이 혼자 공부하기 힘들다고,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할 때는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록해준 학원인데, 체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된 지가 몇 년째인데. 당혹스럽고 화가 나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렇게 말문을 튼 아이는 방과 후 과학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하다가 실수로 실험 결과물을 떨어트린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본의 아닌 실수였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대부분의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된 것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같이 실험하는 팀의 친구가 툭툭 내뱉는 말 때문에 더 속상한데 뭐라 대꾸도 못 하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고도 얘기했다. 오랜만에 아이의 속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엄마도 그럴 때 있다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이니 너를 조금 더 아껴주라고.


한참 뒤에야, 아이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나에게 기대 온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말랑한 작은 손으로 엄마 손을 꼭 찾아 쥐던 어린아이가.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세상을 헤쳐나가다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엄마를 찾아주렴.

엄마는 늘 네 뒤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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