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해봐도 되겠지

부모이자 교사

by 봄날

"훈아, 오늘은 네가 설거지 좀 해~ 어제도 형아가 했잖아~"

아침에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집 느림보 거북이 훈이가 아침에 설거지라니, 불가능한데, 난 혼자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욕실에서 나와보니 싱크대 앞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는 기다란 뒷모습이 보인다.

착한 녀석.

아기 때부터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미소천사'라고 불렀던 녀석은 이제 엄마보다 키가 커졌다.

가끔 시니컬한 표정으로 엄마를 당황시키기도 하는 사춘기이지만,

어느새 아침 설거지를 깔끔히 해놓고 교복을 입고 문을 나서는 뒷모습은 다 큰 어른 같다.


주일 전, 우리 네 식구 모두 개학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던 주말, 남편이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엄마가 요즘 무릎이 안 좋은데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니? 너희들도 함께 집안일을 도왔으면 하는데, 어때?"

아빠의 제안에 선뜻 아침 설거지를 하겠다고 큰아이가 나섰다.

그 마음이 고맙고 기특하기는 했지만, 진짜 실천할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이라, 낯설고 고단할 텐데 며칠이나 갈까, 싶기도 했는데

힘든 내색하지 않고 엄마일까지 도와내서 나를 감동시킨다.


오늘은 퇴근하고 돌아오니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한 녀석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새로운 학교 생활의 이모저모를 풀어놓는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야자 희망원 주셨는데, 작년에 전교 1,2,3등이 학원 안 다니고 학교에서 야자 열심히 한 학생들이라며, 학원 안 다니는 사람들 손들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랑 몇 명이 손들었는데, 이 사람들 기대해 봐도 되겠지, 하셨어요."


하하, 오랜만에 녀석의 기분이 한껏 업된 이유가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였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키는 아빠보다 커지고,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른스럽지만, 아직도 마냥 순수한 어린아이구나, 싶어 귀엽다.

그러면서 감사하다. 아직 순수한 그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채워주신 작은 말 한마디가.


리고 교사라는 나의 직업의 책무성(?)에 대해서 또 한 번 느낀다.

아이들에게 한 번 더 눈 마주치고, 다정한 말 한마디 해 주려고 노력해야겠다.

학부모이자 교사인 나는 매일 감사하고 또 반성한다.


다정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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