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세요

엄마 반성문

by 봄날

“아우, 애들이 어쩜 그래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수능 대청소를 하는데, 틈만 나면 도망가고, 하나하나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너무 힘들었어요.”

“하하, 난 또, 애들 원래 그래요. 샘, 수능 청소 이번이 처음이에요?”

“네, 평소에 착하고 모범적인 줄 알았던 아이들도 그러더라고요. 도망가고 없는 애들 계속 전화해서 부르고, 이쪽에 할 일을 알려주고 있으면 저쪽에서 놀고 있고, 어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맘때쯤 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수능 대비 대청소를 한다. 책걸상을 모두 복도로 빼내고 바닥에 세제를 뿌린 다음, 아이들이 직접 수세미로 문질러 물청소를 하는 시간. 할 때는 힘들지만 다 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상쾌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다 보면 피해 갈 수 없는 연례행사,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웠는데 몇 년째 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도 생겼다. 바닥에 바둑판처럼 그어진 선을 이용해 정확하게 구역을 나누고, 역할 분담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청소 진행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물론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도 학급 아이들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모두가 꾀만 부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올해도 청소구역을 배정하고 청소 용품을 확인한 다음, 반장을 불러 이런저런 전달사항을 알려주었다.

“일단 가서 반 애들한테 역할 분담 알려주고, 책걸상 복도로 빼고 있어. 샘 금방 쫒아 갈게.” 했더니 교무실 문을 열고 나서며 반장이 하는 말.

“샘, 천천히 오세요. 제가 시작하고 있을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들 몇 분이 탄성을 지른다.

“어쩜, 천천히 오래.”

“아유, 너무 부럽다.”

평소에도 방과 후 청소 마무리와 문단속을 자청하는 믿음직한 반장이다. 이런 아이들만 있다면 교직이 얼마나 행복할까.


교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수세미로 바닥을 문지르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렇게 문지르는 거라고 직접 시범도 보이고 격려를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했다며,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일어서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어 간신히 청소를 마쳤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수월하게 끝낸 편이었다. 바닥 쓸기를 맡았던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물을 떠 오고 대걸레질도 했다. 다 같이 도와서 더 빨리 끝났다.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신경도 많이 쓰고 몸도 피곤한 상태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했다. 누군가는 집에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라던데, 이런 날은 좀 쉬고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과 도란도란 식사시간을 떠올리며 기운을 낸다. 가족이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오늘 대청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 반 반장을 비롯한 아이들 자랑도 한다. 그런데 큰아이 표정이 영 떨떠름하다. 이야기도 건성건성 듣는 것 같다. “j야, 엄마 얘기가 별로야?”, “아니요. 그냥, 엄마가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인 것 같아서, 쫌 그래요.”


들켰다. 아이가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기를 바랐다. 우리 반 반장처럼. 그래서 더 잘하라고, 이렇게 해서 선생님들에게 칭찬받도록 하라고 힌트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아, 늘 이렇게 아이는 내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구나, 평소에도 엄마가 교사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오늘도 나는 엄마 반성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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