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오해, 큰 두려움

상처입은 아이들

by 봄날

“야!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떡해? 아휴.”

“어? 네가 그럴까 봐 아까 내가 물어봤는데, 그땐 대답 안 해주고...”

“언제? 난 못 들었는데? 아, 어떡하지? 이거 수행인데...”

“그래서 내가 아까 물어봤는데...”

어제 수업시간 중에 약간의 실랑이와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작은 교실에서 여러명의 아이들이 하루종일 복닥거리다 보면, 작은 다툼은 빈번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다툼의 주체가 승재라는 데에 있다.


평소 말이 별로 없고, 어쩌다 말을 시켜도 말끝을 흐리는 아이. 뭔가 행동이 어눌하고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이 안쓰러운 아이. 그래서 그런지 반에서 아이들과 원활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듯해 늘 걱정스러웠던 아이가 승재다.

“선생님, 저 승재랑 짝이 된 게 벌써 세 번째에요. 자리 좀 바꿔주시면 안되요?”

지난번 자리를 바꿀 때 여학생들이 찾아왔다.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승재와 짝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승재도 눈치를 채고 있을까?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제 수업시간의 다툼까지 일어난 것이다. 일단 무슨 일인지 불러서 들어보자. 먼저 다툼의 현장을 가장 가깝게 보았다는 상민이를 불렀다.


“상민아,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얘기 좀 해볼래?”

“네, 샘, 모둠별로 활동하는 수행평가 과정이었는데요. 활동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승재가 다연이한테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다연이가 못 들은 척 하더라구요. 분명히 못들을 거리가 아니었는데. 제가 분명히 옆에서 봤어요.”

“그럼 너가 볼 때는 다연이나 다른 여학생들이 평소에도 승재를 좀 껄끄럽게 대하는 것 같니?”

“네, 전부터 좀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방과 후에는 다연이를 불렀다.

“다연아, 어제 수업시간에 승재랑 다툼이 있었다던데? 왜 그런거야?”

“아, 그게요. 모둠별 수행인데 승재가 내용을 잘못 작성해서 순간적으로 제가 좀 화가 났어요.”

“승재가 어떻게 할지 물어봤는데 너가 대답을 안 해서 알아서 한 거라고 샘은 들었는데?”

“저는 물어보는지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상민이와 다연이의 이야기가 너무 다르다.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근데, 선생님, 승재가 물어보는데, 제가 모르는척 했다고 상민이가 얘기했죠?”

어라? 어떻게 알았지? 태연을 가장해 본다.

“누가 얘기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고. 근데 넌 왜 상민이가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한참을 망설이다가 털어놓는 다연이의 이야기는 또다시 예상 밖이다.


사실 다연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다시 꺼내놓고 싶지 않지만, 상민이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아이와 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 고통스런 기억을 쏟아내던 다연이는 어느 순간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졌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반에서 무리 없이 섞일 수 있어 좋았지만, 늘 겁이 났다고 했다. 또다시 친구들 사이에서 내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평소 다연이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들뜨고 과시적인 느낌이 들었던 까닭은 아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상민이의 증언이 다연이에 대한 선입견에 의한 오해였던 것인지, 오래된 상처로 인해 다연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인지,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악한 아이는 없으며, 작은 오해로 시작된 갈등이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나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섣불리 개입하려 들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들어주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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