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윤기가 하는 짓이 어이가 없었다. 자기를 놀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은하가 처음 새 학교로 전학 왔을 때, 윤기는 사사건건 은하의 말에 시비를 걸었다. 특히 수업 시간이 문제였다.
“자, 누가 발표해 볼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드는 아이들은 늘 한정적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수업 내용에 관심이 없어서, 혹은 그저 그런 열성적인 모습들이 한심하다고 느껴져서, 손을 들지 않는 아이들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은하는 늘 자랑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정답을 잘 알고 있고 잘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은하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상식이 많네요. 잘했어요.”
선생님의 칭찬에 한껏 고무되어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를 때면 꼭 윤기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은하의 말에 빌미를 잡아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윤기 때문에 약이 오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느라 말다툼까지 이어지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야단을 치시기도 하고 흥분상태를 가라앉히도록 달래기도 하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 되겠다. 은하와 윤기는 짝이 되어서 가까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은하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윤기가 자꾸 시비를 거는 건데 선생님은 왜 몰라 주시는 걸까, 속상했다. 말없이 은하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윤기의 눈빛이 슬며시 웃고 있는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야, 너 내 책상으로 넘어오지 마!”
은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윤기는 책을 펴더니 글씨를 쓰는 척하며 팔꿈치를 은하 쪽으로 쓱 내밀었다.
아, 이 유치한 애랑 상대를 말아야지, 은하는 생각하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교실로 돌아와 보니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 은하의 점퍼 소매가, 옆자리 윤기의 점퍼 소매와 묶어져 있었다. 마치, 손을 잡고 있듯이. 은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가? 왜? 어째서? 화나고 부끄러운 마음에 눈물이 핑글 돌기까지 했다.
“야! 이거 누가 그런 거야?”
모두가 듣도록 소리를 빽 질렀다. 다들 웅성웅성 수군거리기만 하는데 윤기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서 손잡고 있는 옷을 바라보며 은하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
“왜? 보기 좋은데. 얘네끼리 친하게 지내고 싶은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