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았다. 우중충한 하늘에 은하의 깊은 한숨이 더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한없이 낯설고 멀었다.
학교에서 나와 큰길을 건넌 다음, 긴 오르막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중국집 간판을 뒤로하고 작은 골목길로 방향을 틀어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한번 길을 건넌다. 그 길에서 첫 번째 골목, 골목 안 맨 끝 집이 은하네 집이었다.
엄마는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야.”라고 소개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고, 그것도 이층 집이라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은하는 오히려 심통이 났다. 벌써 세 번째 전학이었다. 2학년이 끝나고 한 번, 5학년이 시작되고 또 한 번.
그전에 살던 집은 마당이 있어 좋았다. 아니,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다 함께 뒷산으로 올챙이를 잡으러 뛰어다녔고, 정아네 집에 놀러 가면 정아가 식빵에 마가린을 발라 구워주었다. 은하는 처음 그 맛을 보았을 때가 기억이 났다. 엄마는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맛,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찰 때의 느낌. 정아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났다.
삐그덕, 쇠문을 열고 비좁고 어두컴컴한 1층 앞을 지났다. 거기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끄럽지 않게 조심히 지나다녀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회색 질감의 거친 계단을 올라가면서 은하는 생각했다. 여긴 우리 집이라면서, 왜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걸까?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다. 엄마가 사준 동화책은 이미 다 읽어버렸고, 이제 뭘 할까? 예전 동네에서는 심심할 때 옆집에 가서 책을 빌려 읽었다. 옆집 오빠가 읽는 걸 보고 궁금해서 빌려온 <삼국지>가 재미있었는데, 다 못 읽은 채로 이사를 왔다. 은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그 전 학교와, 그 그전 학교에서도.
어린이 대 공원으로 소풍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장기자랑 시간을 주셨고, 아이들은 쭈뼛쭈뼛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은하야, 네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면 어때?” 친구들이 일제히 은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떨렸지만, 이전에 읽은 이야기를 하나 생각해 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신이 났었다. “역시, 은하는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하네요. 그죠? 여러분?” 하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