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다.

자가격리 4일 차

by 봄날

나는 정적인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는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었고, 몸을 움직여서 하는 일에 굉장히 둔하며, 코로나 상황 이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드는 일에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시끄러움보다 고요함을 반기고 -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 종일 혼자서 책을 읽다가 조금 뒹굴 거리 다가, 정말 심심하면 책상 정리정돈을 하거나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공원에 산책을 가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충분히 혼자인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아, 그런데 이렇게 방 안에만 갇혀있는 시간이 이토록 견디기 어려울 줄이야.

물론 초반에는 주로 약에 취해 잠자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잘 몰랐지만, 이제 책도, 영화도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나가고 싶다, 화창한 햇살을 즐기며 걷고 싶다, 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결정적으로 계속 삐딱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있기만 했더니 허리까지 아프다. 아휴, 자가격리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어제는 안방 화장실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릴 것들은 베란다 밖으로 꺼내놓느라 한참을 보냈다. 나는 평소 내가 참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료함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은 허리도 아픈데,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어쩌나, 궁리하다가, 방 모서리를 따라 걸었다. 그냥 걷자니 너무 서글퍼서 책을 한 권 들고 걸었다. 책을 읽다가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걷다가.


결혼 후 남편이 어머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로 내가 합치는 상황이 되었다. 집도, 학교도, 동네도 낯설어 많이 힘들었었다. 와중에 주말에 남편이 약속이 있어 외출이라도 할 때면, 갓난이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두 살 터울 큰애 손을 잡고 무작정 아파트 단지 안을 걸었다. 하늘을, 나무를, 꽃을 느끼며 걷다 보면 우울함이 조금 덜해지고, 놀이터에 도착하면 큰애가 신이 나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랬었다.

“엄마, 꽃이 말랑말랑해요.” 하며 웃던 그 아이가 벌써 스무 살이 되었으니,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 무렵 아이들은 늘 그렇게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큰 애를 걸리고 작은애는 등에 업고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는 소아과 병원에 갔었다. 의사 선생님이 큰 애를 보고 손바닥을 활짝 펴보라고 하시더니 얼굴도 손도 너무 노랗다고 하셨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어이없다고 생각했는데, 아기 때 황달 앓지 않았냐고 하셔서 다시 놀랐었다. 그러면서 “얘 귤 좋아하죠?” 하셨다. 맙소사, 점쟁이인가? “귤 좀 적당히 먹여요. 황달이 다시 올 수 있으니.” 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던, 그런 날도 있었다.

“엄마, 다리 아파요. 나도 안아주세요.” 떼를 쓰는 큰애한테 내 대답은 항상 그랬다. “형아는 그러는 거 아니야. 넌 형아잖아.”라고. 돌이켜보면, 큰애도 아기였다. 동생과는 겨우 1년 6개월 차이밖에 안 났는데, 늘 형아라고 많이 혼내고 동생에게 양보만 시켰었다. 맛있는 거 사줄까? 하며 데리고 나가서는 아파트 상가 지하식당에서 잔치국수를 한 그릇 사서 나눠 먹었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얼마나 신나 하던지, 큰 놈은 아직도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하릴없이 방안을 빙글빙글 걷다가, 추억만 새록새록 되새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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