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조퇴를 내고 집에 오는 길, 쨍한 햇볕에 이불 빨래를 말릴 생각에 신이 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세탁기에 이불을 밀어 넣고 서둘러 은행 갈 준비를 한다. 3시 반까지라니, 처음 은행 업무 종료 시각이 4시 30분으로 단축되었을 때 직장 동료들과 함께 투덜거렸던 생각이 난다. 그럼 직장인들은 어떡하라고? 특히 우리처럼 평일 조퇴나 결근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지, 하고. 물론 요즘은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래도 가끔 직접 방문해서 처리할 일이 생기면 곤란하긴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요즘은 한 시간이나 더 단축되었다니,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2시쯤 은행에 도착했다. 번호표를 뽑고 소파에 앉아 밴드에서 글동무들의 글을 읽고 댓글도 달고, 요즘 재미 붙인 스위치 연재 글도 읽고 한참이 지났는데 대기 번호가 바뀔 생각을 안 한다. 내 앞 대기 인원이 3명이었는데 한 시간이 다 되도록 겨우 한 명이 줄었다. 기다림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은행 안의 끊임없는 웅성거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 일어섰다. 은행 볼일을 보고 나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갈 예정이었기에 더더욱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만의 한낮의 자유시간인데.
원하는 은행 업무를 처리하지도 못한 채 주차장을 나오는데 주차비를 500원 내라고 했다. 어, 분명히 은행에서 한 시간 주차 확인 도장을 받았는데요? 물었더니,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1분만 지나도 요금이 정산된다고. 맙소사, 은행에서 버린 시간도 아까운데, 나는 왜 이 500원이 더 아깝고 화가 나는 걸까? 경비아저씨를 탓할 수는 없으니 이를 악물고 카페로 차를 몰았다. 가슴속에서 타고 있는 불을 끄기 위해 아이스 라떼 한 잔과, 기분이 꿀꿀한 김에 치즈케익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노트북 배터리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바쁘게 나오면서 충전 선도 못 챙겼음을 깨닫고 울고 싶어졌다. 글쓰기 방 5월 자기소개 글을 쓰면서 한낮의 자유를 즐기고 싶었는데, 이토록 하나같이 계획에서 어긋나다니.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 제목이 딱 떠오르는 날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단돈 1원도 아껴 써야 한다는 교육에 힘입어 절약 정신이 투철했던 나는, 은행 수수료를 아끼겠다고 은행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때 당시 수수료가 300원 정도 했던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아무튼 그런 적은 금액의 돈이 유독 더 아까웠다. 오늘 주차비 500원에 화가 났던 것은 내 오랜 지병 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를 누그러뜨린다는 명목으로 만원 가량을 지불했지만 말이다.
며칠 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자된 에피소드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친정에 들를 때면 기차를 이용하곤 했는데, 지루해할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한 편 구매해서 보여주곤 했다. 아이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라고 하고서는 막상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블 영화는 비싸서 안 된다고 했던 것을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그때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가 3~4만 원 정도 했었나?”
“하하 무슨~ 3~4천 원 했지.”
“응? 근데 비싸다고 한 거였어? 와, 나는 엄마가 비싸다고 해서 몇만 원 한 걸로 지금까지 생각했었어”
막내의 말에 온 가족이 함께 웃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다.
"얘들아~ 대신에 저렴하면서 작품성 있는 명작 영화들을 볼 수 있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