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있는그대로 인정하는 연습

by 봄날

어릴 때 아버지는 늘 집을 비우셨다. 원양어선을 타고 먼바다에서 일하느라,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그랬음을 알지만 늘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사다 주셔도 서먹하고 어려웠던 아버지. 게다가 난 살가운 성격도 못 된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인데,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어른이 될 때까지 쭉 그랬다.


엄마와의 관계는 좀 특별했다. 누구나 엄마와 딸은 영원한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만, 내게는 의지하고 기댈 어른이 엄마밖에 없었으니까, 모든 생각의 기준이 엄마로부터 생겨났다. 엄마는 아빠가 먼 곳에서 고생하시는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니, 너희들이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공부도, 동생을 돌보는 일도, 엄마를 돕는 일도, 모두 잘.


어린 나는 늘 노력했다. 먼 타국의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아빠가 실망하시지 않도록, 아빠 몫까지 해내느라 힘든 엄마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차지한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내게로 향하도록, 늘 최선을 다했다. 그때부터 이미 다른 이들의 욕구를 먼저 헤아리고, 그들의 애정을 받고 싶어 열망하는 태도가 쌓여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려앉는 일상 속의 먼지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어 나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면 엄마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 고대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풍선을 바라보듯 두려운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내가 얼른 한 사람의 몫을 해낼 만큼 자라기를 바라셨을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남편 없이 꾸려가는 가정이 고단 하셨겠지. 이제 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답게 투정도 부리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존재일 수 있음을 알려줄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조금 더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람들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조급증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불같았다. 화르르 타오르는 불처럼 그 자리에서 다다다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는 사람. 뒤 돌아 싹 잊어버리면 끝인 사람. 섭섭한 마음이 들면 입을 다물어 버리는, 혼자서 끙끙거리는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의 소유자. 그로 인해 어린 나는 자주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한없이 여리고 다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늘 긴장하고 노력했지만 멍하니 딴생각에 빠져 길을 걷다가 잘 넘어졌다. 한 번은 그러다가 앞니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다 큰 애가 조심성 없이 넘어졌냐고, 하필 이를 다쳤냐고, 엄마에게 된통 꾸지람을 들었다. 치과에서 인공치아를 끼워 넣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더 혼날까 봐 차마 울지도 못하고 견뎠던 반면, 막상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엄마는 엉엉 우셨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때 엄마는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더니, 생니를 갈아 낸다는 사실이 너무 아까웠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의 눈물이 어린 내게는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조금은 사랑하는구나, 안도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일까?

아닌 것 같다. 어린 내가 결코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들이 내게서 보일 때가 많다.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핑계로 나는 늘 피곤하고 바쁜 엄마였다.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했다. 불처럼 화를 내기도 했고, 얼음처럼 차가워지기도 했다. 특히 첫 아이에게는 기대치가 높았고, 어린 둘째에 비해 꾸지람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도 맏이였지만 나 역시 첫 아이에게 가혹했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했던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늘 후회하고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저 아이는 왜 저럴까? 왜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왜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못할까? 왜 좀 더 부지런히 시간을 쓰지 못할까? 왜, 왜?로 이어지는 아이를 향한 나의 시선들 속에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가 늘 깔려 있었다. 내가 다시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나라면 저렇게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안타깝다 못해 조급증이 일어나 돌연 분노로 표출되기도 했다.

어른스럽게 동생을 챙기고 오히려 엄마를 배려하는 첫째였다. 맑고 예쁜 미소를 띠며 “엄마, 힘들지? 내가 도와줄까요?” 묻던 아이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엄마, 그게 그렇게나 화를 낼 일이야?”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아이의 눈빛, 말투, 표정을 보면서 예전에 내가 비난해 왔던 어른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착한 아이로만 머물러 주기를, 영원히 내 통제 아래 있기를 바랐던 내 마음을 발견했다. 아이에게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이도, 나도, 길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먼 길을 헤매며 돌아왔다.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는 연습을 차곡차곡 이어나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화분에 매일 물을 주고 햇볕과 바람을 쐬어주듯이, 더 많이 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부족한 딸이고 서툰 엄마이지만 ‘나라면’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젊은 날의 엄마를, 인생의 과도기에서 흔들리고 있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고 싶은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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