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싶어

by 봄날

휴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마음껏 뒹굴 거리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

‘엄마’라는 무게가 나를 벌떡 일으키고 부엌으로 향하게 한다. 아무리 부르고 몸을 흔들어도 꿈쩍 않는 아이를 겨우 깨워서 밥을 먹인다. 밥 먹는 틈틈이 방 꼴이 그게 뭐냐, 일찍 일찍 좀 자라, 숙제는 다 했느냐, 학원 늦겠다, 얼른 먹어라, 잔소리 폭격을 쏟아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잔뜩 졸음이 묻어있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인다. 몇 번을 재촉해도 학원 시간에 늦어버린 아이를 차로 태워 학원 앞에 내려주고 나니 힘이 쏙 빠진다.


평소라면 집으로 돌아와 아침 설거지를 하고 주중에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놓친 드라마를 보면서 빈둥거렸겠지만, 오늘은 도서관에 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계속 다시 읽어보려 마음만 먹고 있던 책과 노트북을 미리 챙겼다. 화창한 5월의 열람실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웠다. 창 밖으로 이팝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에 감탄하며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쳤다. 작년에 <너의 작업실>에서 데려온 책이고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혔던 책인데, 다시 펼치니 또 새롭고 참 좋다. 무루 작가님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이다.

아이의 탄생에 오직 부모의 의지만 개입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모든 행불행은 부모의 책임이 된다. 부모의 미숙함과 세상의 불완전함은 아이를 돌보는 마음에 자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 부족한 게 많아서, 내 아이가 덜 행복하거나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나에게 와준 것이라면 부모는 씩씩해질 수 있다. 함께 힘을 내볼 수 있다. (p.13)


엊그제 h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늘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고, 나는 나대로 직장 일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일까지 병행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에, 요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모처럼 어린이날, 비록 이제 어린이는 아니지만, 둘이서 시간을 가졌다.

“훈아, 뭐 먹고 싶어?”

“음.. 햄버거? 피자? 떡볶이?”

참 어린이다운 메뉴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맛집을 검색했고 수제 햄버거집을 찾았다.


“우와~ 엄마, 사람 엄청 많다. 여기 진짜 맛있나 봐.”

아이처럼 들뜬 h와 메뉴를 고르고, 가게에서 바로 구워진 빵 사이에 풍미가 느껴지는 패티, 바삭하고 고소한 감튀 맛에 감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근데 엄마, 애들이 다 선약이 있데.”

어? 아, 네가 보고 싶다던 마블 영화? 같이 볼 사람이 마땅치 않은거야?”

“응. 누구는 아빠랑 보기로 했다 그러고, 누구는 어제 이미 봤다 그러고.”

“그래? 그럼 엄마랑 보지 뭐.”

“엄마는 그런 영화 싫어하잖아?”

“그렇긴 한데, 울 아들이 꼭 보고 싶은 영화라면 함께 가줄 수 있지.”


엄마가 같이 봐주겠다고 했는데도 h의 표정이 침울하다.

“근데, 왜 나는 항상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걸까?”

“.....”

“애들이 나한테 먼저 영화 같이 보자고 물어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아. 늘 내가 먼저 물어보고 대부분은 또 선약이 있다는 답이 돌아오고. 늘 그런 것 같아서...”

아이의 말을 듣다가 순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건 슬프게도 나의 오랜 고민이기도 했으니까. 역시나 사회성 부족한 엄마의 영향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들어만 주었던 그날. 책을 읽다가 오롯이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의 삶은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위험과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먹고 뛰고 구르고 다치기도 하면서 몸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몸이 다 자란 뒤에는 몸이 아닌 것들도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나들며 어떤 것은 허물거나 새로 짓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지도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조금씩 자신을 완성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태어나는 마음을 반복하며 진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경험은 오직 태어난 아이들의 삶에만 놓여 있다. (p.14)

책 속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우린 누구나 내 앞의 생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인생을 모두 책임질 수 없으며, 자기만의 시도를 해 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나도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님을, 성장해 나가는 경험 중에 있음을, 자라나는 아이를 통해 또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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