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여장부였다.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칠 남매를 키워냈고, 대충 쪽진 머리에, 후줄근한 몸빼바지를 즐겨 입었다. 그녀는 호탕하게 잘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도 좋아했다. 나는 예닐곱 살 무렵부터, 시장통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고 왁자지껄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식당으로 할머니를 부르러 가곤 했다.
“할머니! 엄마가 빨리 오래!”
작은 몸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 힘껏 소리치던 내 모습.
“아휴, 내가 못 살아. 할머니이!”
짐짓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나 지금 화났다고, 한껏 한숨 내쉬는, 과장된 몸짓의 나.
그런 나를 반달눈으로 맞아주던 할머니.
“아유, 우리 똑순이 왔구나. 여보게 들, 요 예쁜이가 내 손녀라오.”
호탕한 웃음으로 나를 토닥이던 할머니.
“아가, 할머니 딱 한 잔만 더하고 가마. 알았지?”
눈깔사탕 하나 입에 쏙 넣어주며, 내 등을 슬쩍 떠밀던 할머니 손길. 입 안을 가득 채운 달콤함에 녹아내려, 할머니를 부르러 왔던 임무도 잊고 콧노래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던 나.
“얘 좀 봐! 할머니 모시고 오랬더니, 넌 또 왜 혼자 오니?”
외갓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마의 불호령이 돌아오기 일쑤였던 것 같은데, 몇 번을 반복해 되돌려 보아도 따스했던, 그리운 내 어린 날의 한 장면.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무렵 돌아가셨다. 나는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엄마가 오열하는 모습에 놀라서, 엄마의 슬픔에 압도되어서, 잔뜩 움츠려서 숨죽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라니까…”
그런 종류의 푸념과 원망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오갔고, 엄마는 술 때문에 자신의 엄마를 잃었다는 생각에, 평생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던 할머니. 단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좋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애주가였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해방구가 필요했던 건지, 나는 이제 영원히 알 수 없지만. 늘 그리운 존재인 할머니. 그녀는 당신의 몸을 단장하고 꾸미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어린 내게는 그저 다정한 할머니였을 뿐 그분의 외모나 꾸밈에 대해 사실 잘 인지하지 못했다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새 부인이 생겼을 때다. 푸근한 몸집에 반달눈의 할머니와 달리, 세련된 파마머리에 새초롬한 눈매의 그분이 얼마나 낯설고 싫었던지. 나는 일기장 가득, 두 분 할머니의 모습을 비교하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일기를 썼었다. 그러면서 일기의 마무리는, 할머니처럼 수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새 할머니는 오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돈이 좀 있는 줄 알고 접근한 거였다, 멋 부리고 다니는 거 보면 애초에 알아봤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이모와 엄마 사이에 오갔다. 그렇게 나는, 엄마다운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 것일까? 겉모습을 가꾸고 꾸미는 일에 무심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더 굳건해졌다. 결혼도 하기 전, 아직 젊었던 때에도, 길 가다가 한껏 멋을 부린 중년 이상의 여성을 대할 때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혀를 찼다. 겉모습만 보고 그들을 재단하고, 내 마음대로 추측해서 비난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는 이래야지, 하는 틀을 오히려 내 안에서 더 부풀리고, 그 틀을 굳건히 하며 살아왔다.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키우며 치열하게 살아내던 어느 날, 암에 걸렸다.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내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아 온 많은 허상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 감정을 정확하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는데, 사는 일이 한없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지고, 정체 모를 갑갑증에 멀미가 났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발바닥이 간지러웠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울하기만 했다. 오랜 방황 끝에 무급휴직을 결심했고, ‘줌마네’ 글쓰기 모임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절미’를 만났다. 항상 빨간 립스틱에, 굵은 웨이브 머리가 어깨까지 물결치는 멋쟁이 그녀는 화려한 외모 못지않게, 언변이 좋았다. 툭 툭 던지는 말투가 날카로운 창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트가 넘쳤는데, 말투나 표정에서 늘 자신만만한 태도가 묻어났다. 늘 타인의 기분을 살피는 태도가 몸에 배어버린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어서,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봄날은 어째서 그렇게 순진하고 착해빠졌냐고,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였다. 물론 나는 상처받았다. 그래도 그녀를 알면 알수록 오히려 좋아지게 하는 일이 더 많았다. 다정한 면도 많은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서투른 나는, 모임에서 망설이고 쭈뼛대기 일쑤였는데, 먼저 말 걸어주고 정기 모임 외의 차모임에도 초대해 준 사람은 그녀였다.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해 보이는 그녀도, 자신이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뒷바라지에 열심히이지도 못했고, 부동산이나 재테크에도 관심이 없어서, 충분한 경제력을 갖춰주지도 못했다고, 회한의 글을 써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알아가면서, 내 안에 나도 모르게 공고했던, 멋쟁이 그녀들에 대한 편견도 스르르 녹아내렸다.
부지런히 외모를 가꾸는 엄마도, 외양을 꾸미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엄마도, 엄마로서 가지는 고민과 걱정은 다 비슷하다는 진실.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서 서로의 진심을 마주할 기회가 내게 주어졌기에 얻은 깨달음. 요즘 나는 ‘엄마는 이래야지’에 대한 편견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가끔 예쁜 옷도 사러 가고, 주기적으로 미용실에도 들르며,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과소비할 때도 있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는 ‘나’니까, 스스로를 조금 더 아끼고 가꾸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