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주말에 약속이 생긴 나의 모습은?
A1. 신난다! 뭐 하고 놀아야 더 재미있을까?
A2. 약속 생겨서 좋지만 벌써부터 취소하고 싶다
재미로 보는 부모 유형 검사라면서, 누군가 링크를 보내줬다. 대략 열 개쯤의 질문이 내 앞에 주어지고, 1번 아니면 2번, 두 가지 보기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어떤 부모인지를 판단하는데 이런 질문이 영향을 미친다고? 아무리 재미로 하는 검사라지만, 어떻게 양극단의 질문 몇 개로 내가 어떤 부모인지 보여준다는 것일까? 의심스러웠지만 검사를 완료했다.
‘타이거 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신은 호랑이처럼 자녀를 엄격하게 키우는 ‘타이거 맘’이라며, 이 유형의 특징은 자녀 교육에 누구보다 진심이며, 최고로 만들려는 불굴의 의지 대마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거기에 더해, 나부터 잘해야지 하는 자발적 채찍질 형에다가, 신중하고 과묵한 성격에 감정표현이 약한 편이라는 설명이 제법 나와 맞아떨어진다. 심심풀이 검사 결과가 이렇게 뼈를 때리나? 싶다가, 문득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등줄기를 바라본다. 난 진심이었지만 아이는 힘들었겠지? 뭐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극성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휴...
J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 입시에 실패했다. 기숙형 입시 학원에서 값비싼 시간과 돈을 들여 재수해서, 다음 해에 진학했다.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실망한 탓인지, 그저 지금껏 가열 차게 달려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막상 대학생이 된 J는 오히려 기운 없이 집에 늘어져 있을 때가 많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하루 중 대부분, 핸드폰이나 컴퓨터 앞에만 머문다. 어쩌다 가족이 다 함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화난 사람처럼 말이 없다.
극성 엄마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J의 교육에 나름 열심이긴 했다. 따로 가르친 적 없는데 혼자 한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유치원 졸업식에서 대표 송사를 했을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폭풍 칭찬을 들었을 때, 많은 순간 나는 J에게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투영하고, 기대를 걸었다. 핸드폰 사용 시간을 규제하고, 매일 일정 분량의 학습을 해내도록 다그쳤다.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옆에 쌓아두고 정신없이 빠져드는 아이에게, 다양한 분야를 고루 섭렵하도록 읽을 책 리스트를 조절해 주고, 뛰어놀 줄도 알아야 한다며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등 떠밀기도 했다.
J를 위한다는 핑계로, 내가 밀어붙인 것들에 대한 반작용일까? J는 이제 나를 열심히 밀어내는 중이다. 나의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묻고 또 묻는 엄마가 성가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몸짓으로, 방학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게임에만 몰두한다. 스물하나, 저 귀한 시기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 J를 바라보며, 나는 머리가 아프다가, 가슴이 답답하다가, 나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하며 약통 속을 헤맨다. 우린 무언의 대치 상태로, 이번 여름을 지나왔다.
주말 아침, 느닷없이 방문이 벌컥 열린다.
“아, 이를 어쩌지? 늦어버렸어. 아빠, 저 좀 태워주실 수 있어요?”
눈도 제대로 못 뜬 녀석이, 여름 내내 오후 한두 시나 되어 일어나던 녀석이, 다급해 보인다. 무슨 일일까? 남편과 나는 놀라고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무슨 일인지 묻는다.
“아니, 그게, 오늘 토익시험 신청했는데, 알람을 놓쳤나 봐요.”
아침을 차리던 손을 멈추고, 나는 남편을 바라본다. 어떡해? 눈으로 묻고, 남편은 어깨를 으쓱한다. 방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J야, 미리 얘기를 좀 하지 그랬어? 알았으면 아빠가 미리 밥을 먹던지, 너를 깨워주던지, 했을 텐데.”
굳이 숨길 일도 아니고, 일상적인 일도 아닌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아이를 타박하는 말이 나갔다.
“늦지 않게 내가 혼자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지.”
예전 같으면, “그러게, 미안해요.” 했을 녀석에게서 한없이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 아무 말 않기로 다짐하고선, 또 참견하고 말았다.
언젠가 직장에서 점심 먹고 잠깐의 수다 타임, 한 선배가 갑자기 한숨을 내 쉰다. 이미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이 자신에게,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는 것.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우리 모두, 잠깐 얼어붙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말했을까? 앞뒤 상황은 모르지만, 당사자인 선배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내 자식이 내게,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심정이 될까? 부모도 처음인지라, 아이를 키우면서 실수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그런 원망을 흔쾌히 받아들일 부모가 있을까?
우린 한 마음으로 선배를 위로했다. 얼마나 속상하셨냐고, 다 자식 잘되라고 해 준 말인데, 그걸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고, 그런데, 선배의 마지막 말이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이게 다 애 엄마가 너무 물러서 그래. 애들 하자는 대로 다 해 줘 버릇해 놔서.”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어 반박도 못 했다. 그게 왜 엄마 탓인지, 그럼 그 아들은 왜 엄마가 아닌 아빠 탓을 한 것인지? 혹시 선배도 나처럼 ‘타이거 파파’였던 것은 아닌지?
J는 나의 첫 아이였고, 나는 엄마로서 늘 서툴렀다. 처음이었기에, 걱정도 많았다. 내가 혹시 부족한 엄마라서, J가 더 좋은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지, 내 잘못된 판단으로, 혹여라도 J가 어긋나면 어떡해야 할지, 늘 불안했다. 그래서 더 많이 애쓰고 조바심 냈던 것뿐인데, 내 애정이 아이를 힘들게 했을까 봐, 그래서 열심히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봐, 또다시 걱정스러워지는 나.
시험을 보고 돌아온 J가 오랜만에 수다스러워졌다.
“어땠어? 시험 잘 본 것 같아?”
“아니, 생각보다 리스닝이 좀 복잡하더라. 근데, 좀 연습하면 될 것 같아.”
J가 웃으니 나도 좋다. “엄마, 근데 거기가, … 어쩌고저쩌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알겠다. 타이거맘이든, 캥거루맘이든, 우린 모두 아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매 순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일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