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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30. 2023

괜찮지 않아서

남의 불행은 쉽게 휘발된다

점심시간의 짧은 수다 시간.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 끝에, 내가 말한다. “나는 아들만 둘이라, 딸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게, “그럼, 지금이라도 하나 더 낳아. 늦둥이가 그렇게 이쁘다더라.” 한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진짜, 한 번 시도해 보라니까? 자기 나이 정도면 늦지 않았어.” 그들은 한 번 더 권유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천진하고 일상적인 폭력. 이제는 나에게도 전생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내 병력을, 모두가 기억하고 내 앞에서 의식해 주기를 바라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농담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맞닿아 있을 수 있음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십 년 전, 나는 갑작스러운 옆구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보호자들도 많다. 환자를 대신해 접수창구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 검사실을 찾아 환자를 데려가고, 진료실에서 의사의 진단을 함께 들으며, 약국에서 약 복용법, 주의사항을 대신 듣는 사람들. 내 눈은 어느새 그들의 뒷모습을 따라다닌다.     


대기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릴 때,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초음파 검사 결과를 다시 들여다볼 때, 꽤 커다란 혹이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있어 수술이 불가피함을 통보받을 때, 수술 일정을 조율할 때, 울컥, 무언가가 목울대를 타고 치밀어 오른다. 나는, 나를 찾아온 질병이 서러운가, 혼자 이 모든 일을 겪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아픈가, 잠시 혼란스럽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선다. 내일 있을 수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고, 보호자를 찾는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긴 하지만, 보호자가 주의사항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일 아침에 부모님이 오실 거라고, 남편은 출근해야 해서, 아이들도 어려서 못 왔다고, 묻지 않은 설명을 구차하게 늘어놓는다.     


내 몸은 수술실로 이동된다.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싸늘한 공기가 나를 둘러싼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공간의 온도 자체가 낮아서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몸을 둘러싼 얄팍한 두께의 면포를 어깨 위로 끌어당겨 보지만 소용이 없다. “저기요, 너무 추워요.” 내가 말하자, “곧 마취가 시작되면 괜찮아질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다독인다.     


긴 잠에서 깨어났는데, 전혀 괜찮지 않다. 그냥 배가 아프다고 말할 때의 통증과는 완전히 다르다. 칼로 배를 쿡쿡 쑤셔놓은 것처럼, 뱃가죽이 무겁고, 불타는 듯 뜨겁게 느껴진다. 분명히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걸까? 그제야 나는,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다.      


수술 중에 암 진단이 내려졌다는 말을 듣는다. 내 몸 깊숙한 곳, 소중한 방 하나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알고 상실감에 ㅎ휩싸인다. 매달 내게 은근한 통증으로 다가와 불편함만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부재 소식을 듣자마자 한없이 애달프고 소중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더 이상 출산 계획 따위는 없었지만, 이제 임신이 불가능해진 내 몸이 서글퍼진다.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두 분이 여행 다니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 중이셨던 부모님은, 돌연, 우리 집에 발목이 붙잡힌다. 두 분은 역할을 분담한다. 아버지는 딸의 병상을 지키고, 어머니는 딸네 집에서 살림을 꾸려나가기로 한다. 손주들을 먹이고, 재우고,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딸이 입원 중인 병원까지 1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게다가 항암 중인 딸은 잘 먹지도 못한다. 병실 내 음식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그나마 섭취한 것들을 도로 토해내는 통에, 한 분은 딸이 받아들일 만한 음식을 마련하느라, 한 분은 그것들을 딸에게 운반하느라, 점점 더 지쳐간다.

     

“아버지, 그만 집에 가셔서 쉬세요.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집에 가서도 온전히 쉴 수는 없겠지만, 병원 의자에서 종일 벌서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딸은 자꾸만 아버지 등을 떠민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딸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아버지, 간호사 좀 불러주세요.” 딸의 아랫도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고, 아버지는 피가 마른다. 간호사를 부르고 종종걸음으로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 일 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 오후다. 딸의 주치의는 이미 퇴근한 후다. 급히 수술실에서 응급처치가 이루어진다. 당직 의사가 찾아와 설명한다. 수술 때 봉합한 핏줄이 터져서 그런 것이라고,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았기 때문에 수혈을 진행할 거라고, 메마른 목소리. 뒤이어 방문한 간호사는 한참 동안 딸의 팔에서 핏줄을 찾아 숨바꼭질한다. 몇 번의 실패 뒤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주사를 손등에 놓아야겠다고 선언한다. 마른 손등에 드러난 핏줄로 주삿바늘이 들어간다. 딸은 비명을 지른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도, 고통스러운 항암 과정에도 울지 않았는데, 나이 마흔을 목전에 둔 딸은,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만, 그만이요. 아파요. 이건 너무 아프다고요.” 부끄러움도 잊고 소리친다.      


몇 달간 입원과 퇴원이 반복된다. 1박 2일간 항암제를 주사 맞고, 두 주 동안 집에서 요양한 후, 다시 병원에 가서 백혈구 수치를 측정한다. 수치가 괜찮으면 다음 항암치료 일정을 잡을 수 있지만, 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다음 치료를 기약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 날은 엄마에게 폭풍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한다. 최선을 다해 더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런다.


사람들은 알까?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거울 속에 뼈만 남은, 초라한 몰골을 비춰보는 기분이 어떤지. 손가락 까딱할 기운조차 없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맘껏 토닥이지도, 웃어주지도 못하는 무력감을, 세상에서 모든 쓸모를 잃고, 자리 보전한 사람이 된 절망이 어떤 것인지.      


병원에 3개월에 한 번씩 방문해야 하던 것이, 6개월이 되고, 다시 1년에 한 번으로 늘어나는 동안, 사람들은 잊는다. 내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내 불행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휘발된다. “저이가 암에 걸렸던 그이래.” 뒤에서 수군댈 때는 언제였나 싶게.


아직은 괜찮지 않아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안으로 채워 가는 밤처럼. ‘괜찮은’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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