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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애 Apr 06. 2019

고향

떠나야만 이해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고향에 다녀오기로. 백수인데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짬을 내어 고향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로. 여행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한 장소이긴 하지만. 여행하듯 다녀오기로. 내가 시작된 곳이자 책의 첫 장에 가득 담긴 장소로. 사실 나는 그곳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그곳의 쓸쓸함을 안다. 책에는 이왕이면 좋은 장면들을 골라 담고 싶었다.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도 그곳을 온전히 이성적으로 경험하거나 기억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그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은 떠난 자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떠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지난해 여름 퇴사를 하고 책을 낸 후 이런 글을 썼다.

같은 해 봄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 자신의 영화 레이디버드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다. 집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떠나야만 이해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그는 영화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나는 인터뷰를 보기 전보다 더욱 영화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의 요소 중에 특히 좋아하는 깊고 또렷한 눈으로 인터뷰어와 주변을 둘러보며 그런 말을 하다니. 최고의 설명이었다. 영화를 본 후에 평범한 행복과 평범한 불행에 대해서, 아무튼 모두가 평범하게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하며 안심했다. 지나고 나서는, 지나고 나서야 쓸쓸함보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내가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쓸쓸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집을 떠나는 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디라도 상관없으니까 다른 지역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던 그 나름의 쓸쓸함과 고통스러움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할 나이였다. 떠난 곳에서 경험할 두려움과 내가 저지를 실수들과 내가 만날 무수한 사람들을 미리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다. 돌아보면 그렇다. 아무튼 떠난 곳에서는 집을 퍽 많이 그리워했는데, 너무 멀어서 좀처럼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투리가 TV 속에만 존재하는 언어라고 생각하던 중학교 3학년의 경기도민이 갑자기 온갖 지역에서 온 아이들 사이에서 그 각 지역의 사투리가 뒤섞인 장소에 내던져져 살게 되었다. 지도를 볼 때마다 매번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아래에 있다니. 이렇게 땅끝과 가깝다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거의 바로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 지겹고 외롭던 고향을 가끔씩 밖에 못 가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장소를 내가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다른 장소에서 아무리 바쁘게 숨 깎여가며 살아도 그 집에 가면 아무 생각 않고 쉴 수 있다고. 아무래도 가끔만 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향에만 가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특히 서울에서 지내다가 고향에 가면  여기는 정말 혼자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는 장소 같다고 생각했다. 점점 그런 게 위안이 되었다. 서울에서의 밤길은, 내 뒤를 서성이는 발걸음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자주 두렵다. 고향에서는 어두움을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다. 어두움 그 자체는 그다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고 처연해. 아주 어둡기 때문에 스스스 부서지는 잎의 소리가 더 잘 들렸고 까만 하늘 위의 별이 더 선명했다.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 여름 내내 높이 솟은 것이라면 다 타고 올라 뒤덮어버리는 넝쿨의 모습, 산속으로 들어가면 바람과 나뭇잎 소리, 벌레나 새, 작은 동물의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나는 곳. 눈이 내려앉아 숨죽인 겨울, 야생동물의 발자국. 어둑한 자연. 개울물은 항상 차가웠다. 길게 이어지는 도로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마치 긴 산책로 같았다. 그 마을에선 각 계절이 아주 분명하게 다가왔다. 계절의 장단점이 너무 선명해서 좋은 점도 싫은 점 모두 강렬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릴 적에는 당연하다 여겼던 광경과 감정이 타지에서 살아가는 내 삶에 점점 당연하지 않게 되자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제야 알았다.


비밀 아닌 비밀을 말하자면 나는 봄과 여름이 오래도록 싫었다. 애매한 초봄의 음습함. 눈이 아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 축축하게 젖어 겨울도 봄도 아닌 애매함이 이어지다가 난데없이 꽃이 만발하기 시작해 매번 화들짝 놀랐다. 직전의 애매함도 갑작스럽게 사방이 들뜬 분위기도 싫었다. 태어난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봄만 오면 우울감이 강했다. 봄이 오면 목련을 물끄러미 봤다. 피면서 동시에 잎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하고 하얗고 둥근 꽃. 위를 보면 예쁘고 바닥을 보면 잔뜩 짓이겨져 더럽다. 아 딱 봄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여름은 너무 덥고 너무 해가 강하고 너무 습하고 너무 많은 비가 와  나를 대 환장하게 하는 계절이었다. 온몸을 푹 덮는 옷을 좋아하는데 여름에는 옷도 너무 얇고 짧았다.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은 햇빛이 특히 고통스러웠다.


(C) 2019. HanInae. All rights reserved. ㅣwatercolorㅣ목련_1


“올해의 여름을 나면서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름과 화해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파트 문턱에 화분들을 늘어놓고, 문을 열고 현관 앞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 벌레들이 우는소리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는 그 순간에 큰 만족감이 들더라고요. 땀이 나는 것도 그냥 땀이 나는구나.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까 조금씩 익숙해졌어요. 그래도 아직 태양 아래 오래 걷는 일은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그늘을 잘 찾아다니면 되겠지요. 요즘은 묘하게 내년의 여름이 기대가 되는데, 여름을 기대한 적은 정말 처음이라 저의 변화가 새롭네요.”


작년 가을, 첫 북 토크를 준비하면서 미리 준비했던 문장이다. 물론 내가 작년의 여름을 괜찮았다고 느꼈던 이유는 퇴사와 에어컨 설치의 콜라보 덕분 일 수 있지만… 그래도 정말 뭔가 변화하긴 했다. 날씨는 이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식물을 함께 두고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집 밖의 알아서 피어나고 알아서 지던 식물을 바라보던 때와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밖에. 겨우내 빛도 잘 들지 않는 실내에서 잘 살아준 동거 식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여전히 여름이 어느 정도 기대가 된다고. 어쩌면 이번 여름이 지나고, 더 큰 화분으로의 분갈이가 필요하겠다-고.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심지어 이제는 수영도 할 줄 안다.


이제 봄이다. 전혀 좋지 않았던 순간도 갑자기 그리워지곤 하는데 좋은 기억은 더 많이 그립겠지. 날이 좀 더 화창해지면 다시 식물을 문턱 앞에 늘어놔야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든 책도 누군가가 한 권이라도 더 읽어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또렷해질 봄을 기다린다.


(C) 2019. HanInae. All rights reserved. ㅣwatercolorㅣ목련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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