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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공돌이 Feb 08. 2020

ST#42 바나나우유

누구인가의 기억

나에게는 타인에게는 때론 차갑게 보이고

조카들에게는 한 없이 따스했던 이모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갈 무렵

이모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이모는 전이가 된 상태에서도 항암치료를

잘 받아가며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기 전에도 메말랐던

그녀의 몸은 그 치료의 무게가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입사 후 몇 해가 지난 늦겨울 금요일에 나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게 되었다.


이모가 위독하다.

이 한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버스를 타고 광주를 출발하려는 찰나에

다시 전화가 울린다.

불안하다. 받기 싫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 예상은 그리 쉬이 벗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광주행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그 기억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것으로 인해 나는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언젠가 올지 모르는 부모님의 위중한 찰나에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포항에서 생활이 쉽지 않았다.


이모님이 소천하신지 1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나는 이모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이모의 부재를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았다.


내 어머니도 그려셨을 듯 하다.


입이 짧던 이모가 즐겨하던 바나나우유

내가 한동안 광주행 버스에 오르지 못했던 것처럼

어머니 이모의 부재를 인지하게 하는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집에 와 계시 어머니가

바나나 우유를 드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그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그 모습 것이 무엇을 미하는지 이미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받아 들여야겠지?


하시는 그 외마디가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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