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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다시, 다른 꿈 꾸기

< 이룰 수 있는 꿈만 꾸어야 하나요 >

일찍부터 아르바이트, 계약직, 프리랜서, 직장인, 자영업 등을 해본 경험으로 나는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도 배달의 민족 같은 플랫폼 대표가 되겠다고 창업대회를 좇아 다닌 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그땐 창조경제니 경제혁신센터니 하면서 나라 전체가 새로운 창업 진흥에 지원을 많이 할 때였다.      


하지만 나이가 39살이 넘어간다거나 여성이라면 신기하게도 지원금은 반 이하로 줄었다. 지원 종목도 옷가게, 떡집, 꽃집 같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쏙 뺀 전통적인 여성 개인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상 마흔 넘은 아줌마가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 한들 어딜 가도 왕따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파이팅으로 여기저기 좇아 다니면서 창업교육, IR 교육, SNS 마케팅, 유튜브 편집, 프레젠테이션, 애플리케이션 만들기 등을 배우고 각종 창업대회에 나가보았다. 운 좋게 한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지원금으로 사업을 추진할 때였다. 매일매일 사람들을 만나서 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함께 할 구성원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창업생태계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도 자주 부딪히게 되었다.      


“대표님은 꼭 성공하실 거예요.”     


그땐 정말 내가 성공하는 줄 알았다. 저 인사성 멘트를 뒤로 플랫폼 사업을 접고 그냥 내가 하던 일로 돌아가기까지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철석같이 투자를 약속해 놓고 어떤 이유에서 인지 갑자기 취소 통보를 한 사람,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자명을 바꾸어 지자체마다 지원금을 받아낸 친구, 

차마시며 주고받은 아이디어를 쏙 가져가 본인 대회 작품으로 응모한 사람, 

아이디어를 듣고 자신이 투자를 받아오겠다고 해놓고 카드값만 쓰고 온 사람, 

애플리케이션 제작 마지막 단계에서 연락두절로 잠수를 탄 개발자,      


나는 어느새 그렇고 그런 사연이 많은 창업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걸 극복한 자 만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었을지 모른다. 


창업생태계는 자고 일어나면 빠르게 어제와는 다른 일, 오늘보다 새로운 소식이 넘치고도 넘쳤다. 사람들은 누구든 빠르게 결정하고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행동했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 생각난다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차량은 모두 정지한 채 수많은 인파가 동시에 사방으로 길을 건너던 시부야 교차로와 같다고 할까. 사람들은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가 요이 땅, 불이 바뀌면 거대한 인파가 되어 움직인다. 지난 3월 도쿄 출장 때 마침 시부야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토요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은 평일보다 더 많았다. 실제로 그 인파 속에서 길을 건너보니 어떤 거대한 물결 위에서 내가 아닌 파도의 흐름에 떠밀려 장소를 이동하는 것 같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나는 늦게 도착할 것이다. 


나의 발랄하고 깜찍했던 스타트업 도전 시기는 그 파도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아쉬워했던 분들은 사업의 진전 사항을 지켜보던 자문가들이었다. 묘하게도 다른 아이템으로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는 팀들은 경쟁 상대가 줄어든 것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 나는 그 후유증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 같아 부러 바로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도록 그 일에 매달렸다. 숨을 크게 쉬고  멈추면 다시는  달리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시절 내 아이디어가 알려진 세상, 그 세상에서 빛나고 있을 나 자신을 꿈꾸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 시간들이 생각난다. 돌아보니 꿈이 있다는 건 참 살만한 일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효리가 말했다. 꼭 이룰 수 있는 꿈만 꾸어야 하냐고. 나는 그 대답이 참 신선했다. 우리는 일치감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데 익숙해진지 오래지 않은가. 그래놓고 가까운 지인들 중에 누가 앞서가거나 크게 잘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을 은근히 깎아내리거나 티 안 나게 부정하기도 한다.           


꿈을 크게 가졌던 시절이 그립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꿈을 꾸고 무언가 실패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더 많다.

한때 꾸었던 꿈과 남몰래 이별하기란 또 얼마나 쓰라린가. 


살면서 꿈이 꼭 한 가지여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또 그 꿈을 이루었다고 내 인생에 더는 꿈을 꾸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꿈을 꾼다.  이별은 누가 되었건 어떤 시간이었건, 그때 꾸었던 모든 꿈들을 접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일어나 다시 꾸는 꿈이야 말로 혼자 했던 모든 꿈과의 이별에 대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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