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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돈 이야기는 이별 이야기

< 그땐 내가 생각이 짧았다 >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면 왜 사이가 멀어지는 걸까.      


한때 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있다. 청소년기 학창 시절을 같은 동네에 살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사회 생활하면서부터 각자 사는 곳이 달라지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들 직장 때문에 더욱 소원해졌다.      


하지만 서로 안 좋았던 일이 없었기에 늘 언제라도 연락되면 반갑게 재회하고 시시콜콜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가 특별한 이유 없이 연락이 툭 끊겼다. 기념일이나 명절을 핑계로 안부를 보내면 대화를 더 이어갈 분위기가 아닌 말로 답을 하는 것이다. 바쁜가 보다, 아이 입시로 신경이 예민한가 보다, 나는 그렇게만 여기고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이유가 생각났다.     

 

7,8년 전 내가 자영업을 할 때 현금을 융통하느라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친구는 거절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이 금전적인 거래는 없었다. 나는 그 친구가 돈을 빌려주지 않은 것에 크게 서운하진 않았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 사실이 불편하고 불쾌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급해도 돈이야기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땐 내 입장만 생각했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비로소 깨달았으니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시간이 지나면 사실 돈을 빌린 사람보다 빌려준 사람이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살다 보면 돈 빌려준 사람이 여유가 없을 때도 생기게 되는데 그때라고 해서 모든 돈 빌려 간 사람들이 그 돈을 갚지는 않는다. 언제 갚을지도 알 수 없다. 갑자기 갚아달라고 하기도 뭐 하다.      


돈이 여유가 있더라도 괘씸하긴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나한테 빌려 간 돈 없어도 사는 사람인데 일찍 갚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돈 빌려준 사람은 다 알아챈다.  세상에 안 갚아도 되는 돈은 없다. 


돈을 안 빌려준 사람도 불편함이 오래간다. 꼭 거절하기 힘든 만큼의 액수를 말해놓고 그걸 거절한 사람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거절한 미안함, 상대에 대한 실망, 현재의 경제적 상황,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등이 섞여 어쩐지 내가 상대의 사정을 외면하는 나쁜 사람 같은 찝찝한 기분. 빌려주어도 되지만 빌려주기 싫은 마음까지 들킨 것 같아 부탁을  거절하고 나서 진짜 두 번은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설사 정확하게 혹은 빠르게 상환했다고 해도 돈이 오가면서 불편했던 예민한 감정들은 없었던 사실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이전과 똑같아지지가 않는다. 돈을 돌려준 시기, 방법, 금액, 당시의 각자 사정에 따라 필연적으로 관계는 나빠진다.  점점 그리고 마치 돈 때문은 아니라는 듯이.


돈과 일은 늘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짓말을 한다.  어떨 때는 과연 내가 그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 사이는 변함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아무 문제가 없는 지인들은 돈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그들도 같은 상황이 온다면 십중팔구 사이가 멀어지는 건 아닐까. 


결론은 사람을 잃기 싫다면 절대 돈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된다는 것인데 알면서도 우린 그런 저런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상대에는 엄격하기 때문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인간관계가 있기는 하다. 서로 상대방에게 너그러웠고 서로를 가여워했기에 주고받은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더 돈독해진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경우의 수는 확실히 드물다. 그 또한 내가 선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이 특별해서가 아닐까.      


한 순간 불편하게 했던 나를 용서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자신도 이해하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돈은 다시 벌고 채울 수 있지만 인간관계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비롯된 이별은 살면서 가장 뼈아픈 그리고 돌릴 수도 없는 헤어짐인 듯하여 쓸쓸해진다.      


미안하다. 친구야. 못난 친구지만 그래서 더욱 네가 그립다.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웃고 떠들날 곧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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