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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약자인 듯 약자 아닌 약자 같은 그녀와의 이별

< 나는 상처가 많다고요 >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다. 그녀는 40년 넘게 친부모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살았다. 미국에서 대학교까지 마친 그녀는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만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우리 회사와 인연이 닿았고 서울살이를 하며 한국인으로 살기로 했다.    

  

그녀는 항암치료 때문인지 머리에 숱이 없었으며 얼굴은 늘 부기가 빠지지 않아 부스스해 보였다. 대충보아도 아주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는  언제나 투명한 배낭을 메고 다녔다. 해수욕장에서나 볼 수 있는 비취백 종류였다. 배낭 안에는 각종 소지품과 지갑, 휴지, 충전기 등이 무슨 잡동사니들처럼 섞여서 그대로 내용물을 노출하고 있었다. 회사에 왜 그런 가방을 메고 다녀요 하고 물으니 벼룩시장 같은 데서 거의 무료로 샀다고 했다.      


그녀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주로 먹다 남은 치킨 조각, 과일조각, 과자등이었다. 어느 날은 통장을 보여주며 잔고가 십만 원 밖에 없어서 밥을 사 먹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러 감정표현은 영어로 말했다.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을 때 영어로 더 크게 말하곤 했다. 웃음소리도 기괴했는데 자신이 어색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아리송할 때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그녀가 업무적으로 실수를 하여 상대 거래처에게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단순한 착오였지만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누군가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에 필요이상의 상처를 받는 것으로 보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나는 입양아예요. 당신들은 부모의 얼굴을 알지만 나는 알지 못했어요,라는 말을 자기 방어용으로 반복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녀를 입양 보낸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녀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그녀는 늘 어떤 보상심리가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가장 먼저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원들이 청소를 할 때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암환자였기에 먼지를 마시면 안 되는 줄로 알았는데 자신의 자리는 깨끗하니까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몸이 안 좋다며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그날은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보면 성난 고양이가 생각났다. 얌전하게 앉아서 있다가도 누군가 자극을 주면 금방이라도 할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그녀를 보면 특별히 인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사랑을 받지 못한 얼굴로 보였달까. 


그녀는 대화의 선상에서 자신이 아는 내용이 나오면 절대 다른 이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주장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일지라도 그녀는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하는 가치라도 된다는 듯 필사적이었다. 그런 에너지를 쓰고 난 후의 그녀는 울먹일 때도 있었는데 아무도 그녀를 울린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과했다.      


사람들은 그녀 옆에 가지 않았고, 그녀와 말하려 하지 않았고, 그녀와 밥 먹으려 하지 않았다. 더불어 늘 새로이 구성원이 생기면 그녀와 꼭 불화가 생겼다.      


그런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또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유난히도 컸던 것 같다. 그리곤 사랑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너무나 크게 좌절해 버린 것 같다.  어린 시절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참 안타깝지만 그녀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상처를 무기화하면서 누가 되었건 마주한 상대에게 감정적 우위를 가지려 했다. 처음엔 관심이나 배려를 얻고 싶었겠지만 받으면 받을수록 더 원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가끔 약자가 곧 착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혼자 착각을 해 놓고 약자라 인식한 대상이 무언가 강하게 나올 때 마찬가지로 당황해하면서 상처를 받는다. 내 딴엔 더 배려하고 양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상처의 이력 부분에선 강자이다. 상처들의 경력은 강력한 방어기제를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방어기제가 강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절대 약자가 아니다.  그녀 역시 약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다른 곳에 가서도 똑같은 상처를 반복하며 살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더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당신이 잘못했다 하여 당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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