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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40년간 나로 살았던 그것들

< 잘가라, 무거웠던 내 얼굴 >

안경과 이별했다.      


같이 한 세월에 비해 이별은 참으로 즉흥적이었다.      


내가 안경을 처음 쓰게 된 것은  80년 대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와 종이학을 부르던 가수를 따라 하던 중학교 시절부터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데 그땐 안경을 쓰겠다고 일부러 눈이 나빠지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어차피 아버지가 근시여서 때 되면 유전으로 안경을 쓰게 될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거의 40년 정도 나는 안경을 쓰고 벗는 생활을 지속했다.      


서른 살까지는 늘 쓰고 다닌 건 아니고 안 보일 때만 근시용 안경을 착용했다. 하지만 벗고 쓰고 하다 보니 반달이 곰 얼굴처럼 보이는 난시도 생기고 점점 시력이 나빠져 안경 없이는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갑자기 시력이 나빠지기도 했다. 평생을 책 읽고 글 쓰고 말하는 직업인으로 살다 보니 컴퓨터를 볼 때 안경을 벗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외선 때문에 눈물이 나서 선글라스에도 도수를 적용해 외출할 때 장시간 벗지 못했다.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눈으로 피로가 몰려와 눈은 나의 특별한 취약지구가 되고 말았다.      


한 번은 밤을 새우고 나서 운전을 하니 하얀색 도로선이 잔상을 남기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히 직선도로에 진입했건만 나의 눈에는 방금 전 곡선이 남아 있어 그만 도로선은 두 줄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날은 계단의 높이가 느껴지지 않고 미끄럼틀로 보이기도 했다. 바닥의 단 차가 있는 카페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자주 넘어졌다. 야간 운전을 오래 할 때면 초록과 빨강의 빛 번짐 때문에 두 색깔 간의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다.      


오랜 세월 습관적으로 해온 눈화장도 시력에 좋을 건 없었다. 자주 눈물이 나니 마스카라는 꿈도 못 꾸었고 워터 프루프 아이라인도 귀찮았다. 내사시 판단을 받고 의사는 긴 세월 조금씩 아이쉐도우가 눈에 들어간 이유로 눈이 건조해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방에는 항상 지금 쓰고 있는 안경 외에 편광렌즈의 운전용 선글라스, 컴퓨터용 이렇게 두 개가 더 들어 있었다.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는 얼굴을 자주 만지기 때문에 안경을 쓰고 있을 수가 없는데 하루는 안경을 벗은 채로 아이를 업고 베란다를 나가다가 유리창을 인식 못하고 그대로 얼굴을 창문에 박아 큰 혹이 난 적도 있다. 안경을 벗어놓으면 아이가 밟아서 다리가 부러진 것은 또 몇 개인가. 안경을 벗으면 안경이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인다는 점이 언제나 안경 쓰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던가.      


여름이면 코에 땀이 나고 겨울이면 실내에 들어갔을 때 김이 서린다. 운동할 때는 또 얼마나 불편한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불편하다. 수영할 때는 또 어떤가. 사우나에서도 온 세상은 뿌옇다. 오랜 세월 안경 착용으로 얼굴은 변형되고 인상도 변한다. 콧잔등에 안경으로 눌려진 자국은 결국 착색이 되고 무슨 훈장처럼 점점 더 선명해진다.      


가끔 사람들을 보기 싫을 땐 커다란 선글라스로 내 얼굴의 표정을 가리기엔 좋았다. 오래 눈이 안 좋은 경험을 해서 그런지 안경을 벗으면 보이는 게 별로 없으니까 주변의 시각적 정보에도  예민하지 않게 되었달까. 안경을 쓰는 행위로 무언가 집중할 때 나만의 루틴을 시작하는 느낌도 나는 좋았다. 웃긴 건 내가 안 보이니 남들도 그런 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경이 나의 진짜 눈이 되어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을 때 나는 뒤늦게 수술을 결정했다. 시력 개선에 대한 바람보다는 갑자기 안경을 쓰고 벗는 게 너무나 귀찮고 무겁고 지긋지긋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 거의 3년을 마스크와 모자와 함께였어도 안경을 쓰고 다녔던 내가, 이젠 그만 내가 가진 모든 안경을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결국 노안라식을 했는데 수술한 첫날부터 이걸 왜 이제 했나 싶어 새삼 지난날을 돌아봤다. 사람은 참 익숙한 고통을 잘도 받아들이며 자기 것으로 만들고들 살아간다. 새롭고 더 좋아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괜한 고집을 부리곤 한다. 눈이 나빠진 것이지 마음이 흐려진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눈, 코, 입, 귀는 사람의 감각이 반응하는 신체기관이다. 감각기관의 퇴행이 오면 일상의 불편은 당연하고 뇌의 인지와 판단, 나아가서는 삶의 가치관까지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안경과의 이별이 아니라 내가 맞다는 고집, 괜찮다는 억지와의 이별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요즘 나 혼자 미니멀리즘을 실천 중이다. 

새로 이사 간 사무실에 책꽂이에는 책을 안 꼽는다. 

무엇이든 쌓이는 게 싫다.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것도 싫다. 

이젠 좀 가볍게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1 : 그리고 진짜 진짜 눈 수술을 한 이유를 고백하자면 골프를 시작하고 티샷 할 때 공이 잘 보이질 않아서, 이게 반 이상 차지했다. 안경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것 같아 너무 짜증이 나는 것이다. 골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 마치 안경 때문인 것 같았다. 사람은 이렇게도 참 단순하다.)          


( 덧붙이는 글 2 :  살면서 안경을 잃어버린 때가 있었다. 출장 간 파리에서 테제베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시간이었다.  파란색 동그란 선글라스였는데 그걸 테제베 안에다가 놓고 나온 것이다. 나중에 어떤 좋은 브랜드의 디자인을 사도 그게 그렇게 생각나고 아까울 수가 없었다. 안경을 벗고 나니 그 아쉬움과도 안녕이다. 잘 가라 파리 선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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