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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7. 2023

이혼하지 못하는 그녀

< 그녀들과 헤어질 수는 없어 >

살다 보면 아무리 말해줘도 변화하지 않고서 늘 자신을 자책하는 반복에 빠지는 지인들을 보며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선후배나 동료에 속하는 일상 관계이기에 못마땅하다고 이제 그만 보자 할 수 없는 사이들이 그러하다. 평생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바이러스라도 안고 가는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긴 것을 인정하는 것, 생각보다 이 장르는 이성이 아닌 감정 쪽에 가깝고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작가들은 평생에 걸쳐 천착하는 하나의 화두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일반인도 만나면 늘 한 방향을 향하는 대화 소재가 있다. 내가 미쳐버릴 것 같은 소재는 바로 평생 남편 탓을 하며 살면서 정작 그와 헤어지지는 않은 여인들의 하소연이다. 그녀는 아마 앞으로도 남편과 이혼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이어갈 것이다. 어떨 때는 이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비슷한 결을 가진 화두는 의외로 많다. 조금 콘텐츠의 심각성을 낮추어 보면 여행을 가고 싶다, 살을 빼고 싶다, 담배를 끊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다. 운동을 하고 싶다 같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소재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 식의 이야기를 늘 반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자신에 집중하지 않고 남들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 남들이 보는 나, 남들처럼.... 남들에게 뒤처지 않는... 남부럽지 않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어딜 가면 남 이야기만 한다. 남들의 불행을 단골로 소재 삼고 마치 공감하는 듯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실시간으로 가장 많이 알고 제일 빨리 전해준다. 그러면서 자기가 늘 주장하는 그 한 가지는 다음번 만나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을, 세월을 보낸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사람들이 가장 부러운 것이리라.     


나에게 충고와 조언을 바라서 진지하게 해 주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만 듣고 그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만나지도 말라고 한 어느 스님이 기억난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핑계를 찾으려고 혹은 노력은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고 묻는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속으로는 이혼을 할지 안 할지 다 결정해 놓고 그냥 물어볼 뿐이라 했다. 절대 내 말을 듣고서 결정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아이가 있어도 누군가는 아이 때문에라도 이혼한다는 결정을 하고, 또 다른 이는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고 하니까 말이다. 아이는 변수가 아니라 자기가 기우는 마음에 아이를 태우는 것일 뿐.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새로운 것을 얻는 기쁨의 크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슬픔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놓아버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일일지 모른다. 그것을 놓아야 새로운 문도 열리고 다른 상황도 기회도 오는 것인데 우리는 그다음에 대한 불안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어떡하지 하면서 그 사실을 여전히 꼭 쥐고 있다.      


만나면 늘 이혼하고 싶다고 최선을 다해 자기 생각을 피력하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이젠 이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든 보유한 자원을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궁리를 해보라 말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듣지는 않을 것이니까 나도 피상적인 멘트를 날리게 되었달까. 그렇게 하여 결국 하루를 시달리고 지겨운 에너지를 뺏기고 돌아왔다. 논리도 순서도 없는 이야기를 마구 하다가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섞어서 하다가 하루의 끝에서 헤어졌다. 나는 며칠을 끙끙 앓다가 글로써 고자질을 하기로 했다.      


또 얼마간은 조용하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늙으면 하나씩 얻게 되는 여기저기 만성병 마냥 우리 주변엔 오늘도 이혼하고 싶어 하는 그녀들로 가득하다.      


어쩌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생긴 것을 받아들이는 일.

나이 드니 아니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그와 그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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