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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기획인생 돌아보기

< 들어가며 >

십 년 전에 소설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처음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하고 작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찾아다녔다. 어떤 소설가는 이 가슴에 한이 쌓이고 쌓이면 그땐 포클레인으로 퍼 내듯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떤 분은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낄 땐 글을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같이 공부하던 문하생 중에는 사람들이 흔히들 자기 인생을 소설로 쓰면 백 권이 넘을 것이라고 하여 자신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막상 단편 두어 편을 쓰고 났더니 더 쓸 것도 없다고 했다. 이 번 글을 마무리하고 났더니 그때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소설은 아니지만 결국 내 이야기를 정리하였으니 그 시절의 공부가 헛된 것은 아니었나 보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라는 소설집이 있다. 여러 단편들 중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이 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여자가 빵집 주인의 권유로 하찮아 보이는 빵조각을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사고를 알지 못했던 빵집 주인은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 자꾸 전화를 하였고 여자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아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케이크를 예약한 사실을 기억해 내곤 빵집을 방문하였고 퉁명스러운 주인에게 아들이 차에 치여 죽었다고 소리친다. 주인은 여자를 진정시키고 이럴 때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갓 구운 따뜻한 빵을 권한다. 주인은 밤새 빵을 굽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밤새도록 주인과 이야기하며 그 자리에 머문다. 아들을 잃은 큰 슬픔이야 어찌할 수 없겠지만 잠깐의 허기는 채워졌을 것이다. 이 글도 기획자들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잠깐의 휴식 속에서 기획 일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실제로 유난히도 머리가 무거운 어느 찌뿌둥한 아침에, 

   밥을 먹으러 나가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몸은 하나도 움직이기 싫은 점심시간에,

   하루가 지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시간이 남은 텅 빈 오후에, 

   집에 들어가 봐도 딱히 해결은 나지 않을 것 같은 대책 없는 저녁에, 

   혹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만 잠에서 깨어버린 어느 새벽에,      


가볍게 펼쳐보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어떤 이유로 잠시 흐트러진 일상이었다면 이 조그만 도움으로 다시 당신의 기획이 차질 없이 운행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살아보니 일상의 힘은 무엇보다도 삶을 지탱해 주는 사실상의 기본 동력이다.      


나는 이 글들을 LA에서 시작해 LA에서 끝마쳤다. 낮과 밤이 바뀐 도시에서 식사를 하지 않던 시간에 몸속에 먹을 걸 집어넣고, 한마디의 한국말을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 오로지 나의 기획인생만을 돌아보는 시간을 오롯이 가졌다.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들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고 설득하고 주장했던 것 같다. 그 근사한 일을 나도 해 내었다는 기쁨을 이 책을 쓰게 한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 앞으로 부족한 글을 의미 있게 보아주실 모든 이에게도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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