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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텍스트는 항상 이미지와 같이 표현한다

< 기획자의 실무_2 >

 모든 기획에는 계획서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기획서, 제안서가 존재하는데 기획을 잘하는 것과 기획서를 잘 쓰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시험을 잘 치는 것이 꼭 일치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모든 문서가 디지털화되고 파일의 시대가 오면서 점점 더 눈으로 보게 되는 시각적인 자료는 중요해졌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발표자가 말로 설득하는 시간이 분명히 주어졌었고, 내용보다는 말을 잘해서 현란한 발표로 기획안을 잘 포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없는 내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비대면의 시대에 기획서는 텍스트를 포함한 모든 비주얼의 총합으로서 그것을 보는 사람을 설득하는 역량까지 포함하는 결과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 사회학, 경영학, 역사학, 철학 등의 전통적인 문과출신 기획자보다 디자인, 교육, 과학, 커뮤니케이션 등 실용학문 전공자들이 더 쉽고 더 설득적인 방법으로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것 같다. 즉, 표현할 수 없는 아이디어나 글로만 된 추상적인 계획은 지금 시대의 기획과는 맞지가 않다. 하여 문과출신 기획자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만 적을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것과 유사한, 혹은 그것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와 함께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      


  언젠가 박사를 전공하고 있던 고급인력을 해당 분야 콘텐츠 설계 담당자로 기용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두 군데서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위를 받았다. 관련 실무 경력도 많았다. 스토리를 잘 구성하는 사람이라 하여 소개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경과해도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매번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식이었다.      


  우리 쪽 일은 텍스트만 있을 경우, 무엇보다 디자이너들이 읽기를 싫어하기도 하고, 각자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기도, 공유하기도 어렵다. 파일로 빠르게 이동하며 결과물이 완성되는 디지털 시대에 텍스트는 미완성 아이디어다. 자신이 생각한 내용은 반드시 이미지로 부연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레퍼런스라도 찾아 놓아야 그다음 과정이 진행된다. 오래전 타이피스트와 그래픽 디자이너가 따로 있을 땐 기획자가 생각을 하고 손으로 문서를 작성하면 누군가 타이핑을 치고, 누군가 그림도 그렸을 것이다. 박사친구도 자신의 방대한 생각을 잘 정리해 일단 텍스트로 문서를 만들어 놓고, 그 완성본을 가지고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으려 했다고 한다.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은 더욱 텍스트와 이미지 병행으로 이야기 파일을 완성하기 어려워한다. 그렇게 되면 공부를 많이 한 박사출신 기획자와 지금 하나도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디자이너들과 괴리감은 점점 커진다. 그리고 텍스트 작성 후 파일을 다시 열어 이미지 합성을 한다고 했을 때 생각을 두 번 해버리는 꼴이 되므로 최초 생각을 잊어버리거나 두 번째 생각하면서 더 낫다고 생각되는, 글과는 다른 방향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래도 같은 내용을 두 번째 하는 생각이니 더 심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효율성 면에서도 지양해야 할 습관이다.      


  기획자는 생각과 동시에 텍스트를 적고 바로 그 생각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이야기 파일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인문학 전공 출신의 기획자에게 이 작업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피피티 파일을 열고 글과 그림을 동시에 얹어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 바란다. 때로는 한 장의 이미지가 어떠한 글을 압도하기도 한다. 역사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은 과거 사진이 많기  때문에 쉬운 편이다. 과학관도 특정 주제별 자료들이 많으므로 새롭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미지 리서치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평화', '친환경', '안전', '혁신', '성장'같이 어떤 일의 결과로써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해야 할 때이다. '용서', '기원', '공감' 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도 표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어려운 걸 쉽게 해내야 한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좋은 이미지를 선별할 줄 아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또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를 합성하다 보면 그 간단해 보이는 생각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전달받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설득을 하려면 우선 잘 전달되어야 한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이미지로도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생각은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어떻게 해도 표현할 수 없다면, 생각을 더 이상 전개시키지 마시라.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표현이 어려운 그 개념을 이미지로 치환해 내었을 때, 바로 기획자의 실력이 쑥쑥 자라나는 것이다. 주로 고학력 인력들이 글로만 작업을 해 나가고 바로 표현할 수 없었던 생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혼자만 저 멀리 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디지털 시대에 환영받는 기획자는 자신의 생각을 충분한 이미지로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산만한 이야기를 그냥 허공에 떠드는 나 홀로 지식인에 불과해진다.



< 함안박물관 제2전시관의 전시물 설계 제안의 전시주제 >

 ‘문화보석함’이라는 합성된 조어를 표현하기 위해 그 지역의 자연과 역사문화환경의 뿌리가 된 습지생태계 식물인 <마름쇠>를 발굴

다이아몬드 구조를 가지는 <마름쇠>의 형태를 역사로 보고, 이것이 문화로 이어진다(꽃이 핀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지역에서 중요성을 가지는 연꽃을 등장시킴

 700년 전의 씨앗이 문화의 열매로 익어간다는 의미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야기로 보이도록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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