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자의 실무_8 >
이번에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새로운 생각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게 되는 순간, 그 순간 기획자로서의 태도에 대해 정리해 보자.
회의나 보고는 기획자의 일상이다. 그런데 듣던 중 자신들이 안 들어본 단어가 나왔을 경우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이 있어요?”
“네,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고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 논문에 실린 연구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밝힌 내용이죠.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이렇다고 합니다.”
다음 내용이 끊어지지 않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순서와 의도대로 설명을 마치기 위해 나는 그렇게 말한다.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렇게 이어 붙이고, 상대 질문에 답하느라 방향을 잃어버리진 말라는 취지다. 관련 정보를 공부하고 새로운 내용을 도출하다 보니 내 방식대로 말을 만든 것인데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앞서도 언급했듯이 전문가는 이것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획자는 무엇이든 매번 자기 스타일대로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절대로 상대방이 알고 있지 못하는 단어 몇 마디 했다고 주눅 들거나 틀렸다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에 내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지금까지 없는 말들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상대의 낯섦에 당당하기를 넘어 즐기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요즘은 구글링으로 바로 지식을 검색할 수 있으므로 틀린 정보를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실수를 바로 인정하라. 아, 제가 착각을 했나 봐요. 빠른 인정은 결코 전문가다움을 해치는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빚어낸 새로운 용어들은 검색으로도 확인되지 않으니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야 한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먼저 그렇게 짓고, 그렇게 호명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자격이 있는가. 경력이 쌓이다 보면 내가 그 분야 학자가 아니라서 그렇지 거의 틀린 말도 하지 않게 된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하다.
기획자는 본인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그 자리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가끔 남의 생각이면서 본인 생각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나쁜 버릇이다. 함께 빚어서 커진 생각을 누군가 대표로 이야기할 때는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땐 우리의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회의할 때, 일상 대화 시 누군가의 의견을 잔뜩 비판하고 반대해 놓고서, 정작 그들 없는 다른 곳에 가서는 똑같은 내용을 마치 자기가 오래 고민해 온 척, 떠벌린 적은 없는가. 신입시절 임원을 따라다니다 자신이 부하 직원을 불러다 혼 줄을 내놓고선 다른 회사에 가서 천연덕스럽게 요즘 이런 방식이 유행이라고 떠드는 상사를 본 적 있다. 특히 아이디어의 핵심 부분, 개인의 창의성이 오롯이 담긴 결과를 가지고 자기 생각 없음을 면피하려 내세우는 행위. 그 또한 도덕적이지 않은 기획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이런 이들은 언제나 더 노력하고 더 괜찮은 아이디어를 제시한 누군가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것으로 인식하려는 버릇이 있다. 회사의 대표나 팀장이 되어 팀원들이 만든 안을 대표해서 전달할 때와는 결이 다르다. 한 사람은 자기 역할을 한 것이고, 한 사람은 자기 역할을 못한 것이므로 절대 근절해야 할 악습이다. 사실 이 방법이 기획자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원래 자신의 머리에서 우러난 생각이 아닐 경우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먹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다가도 내가 그 생각의 원작자가 아닌 것을 알려야 할 시점에는 꼭 언급을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언급하는 것은 다른 직원이 생각해 낸 것을 내가 한 것처럼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순전히 내가 만든 생각을 부연할 때, 그러나 내 경력이나 회사의 규모나 자리의 성격상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 순간에도 확신에 찬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시절 기획자는 높은 직책을 가진 상대사 임원이나 심사위원들 앞에서 당황할 때가 많다. 바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각의 주체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이다. 내부에서 상사나 대표가 물어본다면 편하게 답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 더군다나 초면이라면 어찌 답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가장 좋은 답은 정직한 답변일 것이다. 감탄사와 함께 이 생각은 누가 한 것이냐 물어본다면 아이디어가 좋으니 최초 발상자가 궁금한 것이다. 비슷한 것 같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당신이 한 생각이냐 묻는다면 이는 사실 애매하다. 초보인줄 알았는데 너 꽤 하는구나, 생각을 많이 했구나,라는 칭찬의 뜻이 첫 번째다. 혹은 어디 있는 생각을 가져다가 말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종류의 질문은 내가 경력이 많아 상대가 무한신뢰를 하고 있다면 사실 그런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 가도 나의 말을 경청하지 아무도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을 때, 그 시기가 왔다면 당신은 전문가가 된 것이다. 듣는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할 때 더 수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故이어령 교수였거나 유홍준 청장이었다면 절대로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들 생각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름 떨친 작가가 만들어 놓으면 쓰레기도 작품이 되고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배려해 주는 이치를 잘 기억해 두자.
그러므로 당신이 무언데 그런 말을 지었냐 하는 표정을 보았다면 그땐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표정으로 당당히 미소 짓기 바란다. 기획자가 나인데 그럼 누가 한단 말인가요?
<고마나루나>라는 콘셉트를 말했을 때 발주처 대표는 내게 물었다. 한실장이 만든 거야?
‘고마나루 Gomanaru’는 ‘곰나루’라는 뜻으로 웅진(熊津) 공주의 옛 이름이자 금강변 나루터 일대를 가리킨다. ‘마루나’는 꼭대기라는 의미의 순수 한글이다. 그러므로 고마나루에 마루나를 더하면 고마나루나가 되는데 이것을 동아시아의 문화허브인 新항구라 불러보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고 개방과 포용, 확산의 선진 정신을 선도한 백제 특유의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고마나루에 마루나(꼭대기)를 더한 新항구 고마나루나. 웅진백제 역사관의 재개관에 맞추어 새롭게 부활한 항구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면서 제안한 전시주제였다. 세상에 없는 말을 지어놓고 좀 어렵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어려워서 문제가 될 것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답을 하지 못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남겨놓은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국보시대國.寶.時.代는 국가 보물의 시대를 의미한다. 보물이 속절없이 사라지던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며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수호하자는 의미에서 국보시대라는 주제를 제안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새롭게 열어갈 국보시대는 우리 문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대 일 것이라는 바람에서였다. 이 때도 역시 <국보시대>는 실장님이 만드신 거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람들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언젠가 모든 기획자에게 이 질문이 다른 누가 아니라 당신이 만들어서 더 좋고, 더 와닿는 군요의 다른 말이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들만 평가할 수 있는 어려운 주제 말고, 일반 관람객도 브랜드 네이밍처럼 떠올릴 수 있는 용어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그런 케이스였다. 공예박물관의 주제는 공예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도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내포하여야 한다. 건립위치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북촌과 인사동 투어의 중심지였다. 공예박물관은 문화, 예술, 교육, 산업, 관광을 위한 모든 경험으로서의 as 공예를 만나고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개개인 각자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공예박물관에 모인 집합은 특정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로서 우리 us가 된다. 하여 모든 경험으로서의 공예를 Craft as로, 공예를 경험한 공동체로서 우리는 Craft us로 하고 둘을 합쳐서 ‘CRAFTAS, CRAFTUS(크레프타스, 크레프터스)’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공예를 의미하는 CRAFT가 바로 시각적으로 인지되면서 뒤에 다양한 단어가 더해져 공예의 확장성을 높여가고자 실험적인 전시주제를 표현해 보았다.
처음 들었을 때 어찌 보면 억지스러울 수 있는 단어라 할지라도 기획자를 비롯한 팀원들이 애착을 가지고 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만든 말이 아닌 원래 있었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어내고, 불러주고, 그려내고, 발표하다 보면 그런 일을 하는 나 자신이 기특해지는 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