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자질_1
조금 거리를 두었던 이유는 나도 모르게 글을 쓰면 자꾸 싫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서였어요. 마치 이곳이 나만의 생활 고자질 장소같이 여겨졌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잠시나마 싫었던 감정,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알고 있는 단점들,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누군가의 결정, 그런 것들을 파헤치면서 은근히 그들을 지적하고 내가 맞다는 논리를 정리하고 그러고 나서 감정을 털었다고 자위하는 것 말입니다.
그 에너지가 싫었습니다. 좀 지겹더라고요.
요즘은 화를 내고 그 과정을 똑같이 지나가는 뻔한 단계도 싫더라고요. 어차피 시간 지나면 화는 누그러질 것이고 결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확실히 나이 들어서 감정이라는 기운을 쓰는 것에도 효율적인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빠르게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말해줘도 변화하지 않고서 늘 자신을 자책하는 반복에 빠지는 지인들을 보며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선후배나 동료에 속하는 일상관계이기에 못마땅하다고 이제 그만 보자 할 수 없는 사이들이죠.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바이러스라도 안고 가는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긴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힘이 부쳐서 잠시 글을 중단했는데, 역시나 글을 쓰지 않으면 이 갑갑함을 풀 수가 없어서 다시 적습니다.
작가들은 평생에 걸쳐 천착하는 하나의 화두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일반인도 만나면 늘 한 방향을 향하는 대화 소재가 있습니다. 제가 미쳐버릴 것 같은 소재는 바로 평생 남편 탓을 하며 살면서 정작 그와 헤어지지는 않은 여인의 하소연입니다. 그녀는 아마 앞으로도 남편과 이혼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이어가겠죠. 이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사실 비슷한 결을 가진 화두는 의외로 많습니다. 조금 콘텐츠의 심각성을 낮추어 보면 여행을 가고 싶다, 살을 빼고 싶다, 담배를 끊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다. 운동을 하고 싶다 같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소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 식의 이야기를 늘 반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어요.
자신에 집중하지 않고 남들에 집중합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 남들이 보는 나, 남들처럼.... 남들에게 뒤처지 않는... 남부럽지 않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어딜 가면 남 이야기만 합니다. 남들의 불행을 단골로 소재 삼고 마치 공감하는 듯 마무리합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실시간으로 가장 많이 압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늘 주장하는 그 한 가지는 다음번 만나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을, 세월을 보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사람들이 가장 부러운 것이죠.
나에게 충고와 조언을 바라서 진지하게 해 주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만 듣고 그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만나지도 말라고 한 어느 스님이 기억났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핑계를 찾으려고 혹은 노력은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고 묻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속으로는 이혼을 할지 안 할지 다 결정해 놓고 그냥 물어볼 뿐이라 했습니다. 절대 내 말을 듣고서 결정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아무리 아이가 있어도 누군가는 아이 때문에라도 이혼한다는 결정을 하고, 또 다른 이는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고 하니까요. 아이는 변수가 아니라 자기가 기우는 마음에 아이를 태우는 것일 뿐.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새로운 것을 얻는 기쁨의 크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슬픔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합니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놓아버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일인 것이지요. 그것을 놓아야 새로운 문도 열리고 다른 상황도 기회도 오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그다음에 대한 불안에 확신이 없기 마련이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젠 이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든 보유한 자원을 가지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궁리를 해보라 말했어요.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듣지는 않을 것이니까 저도 피상적인 멘트를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하루를 시달리고 에너지를 뺏기고 돌아왔습니다. 논리도 순서도 없는 이야기를 마구 하다가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섞어서 하다가 하루의 끝에서 헤어졌습니다.
또 얼마간은 조용하겠지만 일정 시간 지나면 반복될 이 상황이 싫어서 저는 당사자를 미리 혐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늙으면 하나씩 얻게 되는 여기저기 만성병 마냥 그녀도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저만의 생활 고자질 장소가 되어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