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에서 중요한 것들 >
지난여름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갔을 때였다.
남편 지인분들과 뉴욕과 LA에서 골프 만남을 가졌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오로지 골프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도 편하고 실수가 나와도 자책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나는 이 골프장에 골프를 치러왔다는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캐디가 없어서 클럽도 혼자 선택하고 거리도 혼자 파악하고 자잘한 도움 없이 카트도 내가 운전하고. 골프를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 왜이리 마음이 편한지 그땐 몰랐는데 다시 한국 돌아와 골프장에 가면서 새삼 깨달았다.
첫 번째는 차가 중요하다.
한국은 대체로 골프장까지 거리가 멀다. 오고 가고 차에서 머무는 시간이 상당하다. 골프장 도착해서 클럽을 내리고 다시 라운딩 후 클럽을 차에 싣는 순간 내 차가 일정 시간 사람들에게 노출된다. 브랜드와 차종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그 순간은 꽤 중요한 타임인 것이다.
두 번째 복장이 중요하다.
골프 치러 가보면 안다. 특히 여성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최신상의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로 막강의 준비를 하고 나온다. 예쁘고 신기한 용품도 많다. 미국에서는 남성들의 경우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정말 운동하러 가는 복장으로 편하게 가는 사람도 많다.
세 번째는 사진이 중요하다.
꼭 인스타에 올리지 않더라도 멋진 구름을 배경으로 혹은 시그니쳐홀을 배경으로 우리는 그렇게들 사진을 찍는다. 단체, 셀카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껏 멋을 내고 갔으니 사진을 찍을 기분이 나기도 한다. 한국 골프장 캐디들의 사진 촬영 실력은 미국의 4대 캐년에 상주하는 가이드들의 실력 못지않다.
네 번째 스코어도 중요하다.
매 인생 시기마다 성적과 점수가 중요했던 우리는 백타, 구십 타, 팔십 타, 싱글과 같은 자기 평균타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골퍼들이 미국에서 항상 상위권에 드는 것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뒤풀이.
내가 아는 지인은 내가 골프를 때려치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동반자들과 라운딩 후 식사와 커피, 등의 애프터 자리라고 말한다. 미국엔 골프장에 사우나가 없다. 우린 운동 끝나고 샤워한 후 서울 근교나 지방 맛집에 들러 식사를 할 경우가 많다. 물론 그때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골프웨어가 아닌 사복차림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우린 소중한 시간을 내어 돈을 들여 골프장에 왔으므로 그 시간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나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동반자들이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고, 골프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고 산다.
나는 이러한 한국 사람의 특성이 예전엔 참 싫었다. 무엇이든 남들 눈치를 보고,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의 평가 때문에 자기 검열과 통제를 지속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맘에는 들지 않거나 자기 뜻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선택을 따르게 되고 그리하여 무언가를 감수하며 사는 곳이 한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남들이 중요한 나라, 한국에 사는 한 그 테두리를 벗어나 혼자 내 맘대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바로 저 남들 의식 문화 때문에 우리는 계속하여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우리는 어느 한 시기라도 편하게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않는다. 모두들 열심히 살다 보니 각 분야의 동반성장으로 모든 것이 상향평준화 되지 않았나 싶다. 거창하게 접근하자면 바로 이것이 한국 사람들의 경쟁력이고 민족성일 것이다.
하지만 오십 넘어서야 비로소 너그러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여전히 한국 사람으로 사는 건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봤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다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알고는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