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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이별의 성적표

< 들어가며 >

누군가 이별의 성적표를 작성해보라고 한다면 슬며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적 한동네에 살았던 코흘리개 친구들을 뒤로하고 서울로 이사 갈 때, 그때였던가. 자꾸만 멀어지던 그 친구는 한자리에 서서 내가 탄 트럭을 정지화면처럼 쳐다보다 희미하게 사라졌다. 그게 아마 내 인생의 첫 이별이었던 것 같다. 이젠 길거리에서 만나도 서로의 변한 모습을 잡아 멈출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 1학년 첫 교생선생님은 어떤가.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까지 선명한 그 선생님은 우리 반 전부가 기합을 받을 때 앞에서 같이 벌을 받았다. 그녀가 교생실습을 마치고 돌아갈 때 예상대로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울지 못했다. 혼자만 울지 않는 존재감으로 그녀의 눈에 띄기라도 바랐던 것일까. 

     

훗날 내가 교생이 되어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과 헤어질 때 나는 나같이 무덤덤해 보이는 친구를 몇몇 발견할 수 있었다. 이별도 처음 해볼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의 알 수 없는 이별일지라도 언제든 가장 빨리 공감하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우린 살아오면서 얼마나 이 순간이 헤어짐의 찰나인지도 모르고 뒤돌아서는 순간이 많았던가.      


누구나 울지 않았다고 덜 슬프거나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어쩜 그때 그 순간 울지 못했던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씩 나누어 흘리는 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처럼 천천히 되도록 오래 충분히 이별을 수행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삶의 여정 속에서 나를 떠나간 모든 것들에 조금은 다정한 배려를 해주는 건 어떠한가. 떠나간 모든 것들에 대해 나누었던 그만큼의 예의를 다해 인사하는 일이 어쩌면 제대로 이별하고 그럼으로써 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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