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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한 세상을 저버리는 이별이란

< 아버지 왜 그랬어요 >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약속장소에 늘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말은 틀렸다. 

  누구와 어디서 약속을 하건 일찍 도착하기에 결국 더 기다리게 된다. 


  약속장소에 늦은 적은 거의 없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가던 중이었다면 대개 두어 시간 전후로 도착한다. 이 강박증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트라우마 논리에 비추어 봤을 때 이 집착은 그때 그곳에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집은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아주 가까워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그날은 무슨 이유에선지 어린 나 혼자 지방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 넓은 장소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가방을 들고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채 각자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만 멈춘 채 말이다. 


  어떻게 모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을까. 어린 나는 그런 어른이 참 부러웠다. 그들은 마치 고속터미널에서 늘 살아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땐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었을 때라 다들 고개를 들고 다녔다. 어른들은 절대 누구를 찾는다고 두리번거리거나 어디로 가는 건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곳은 능숙한 어른들의 세상이었다.  

"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


  아버진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은커녕 커다란 짐 가방을 맡기곤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셨다. 뒷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급했던 듯하다. 그냥 화장실이나 음료수를 사러 가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후로 두 시간이나 더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태어나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렇게 오래 누군가를 기다렸던 적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미션은 아마도 커다란 시계가 있고 몇 번이라 적혀있는, 혹은 약국이나 매점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라는 정도였을 것이다. 방향감각이 없었던 어린 나는 혹시라도 잠시 이동을 하면 나를 찾지 못할까 봐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작은 내가 앉아 버리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돌처럼 굳어진 내 앞에 아버진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들고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긴 하셨다. 그런데 오래 기다렸지, 미안하다 같은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수고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이상한 표정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떤 고통을 꾹 참다못해 그 임계점을 넘어버려 아예 얼굴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달까. 


  나는 저만치서 곱게 차려입은 여자 한 분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헤어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집 앞에서 아버진 내게 선물을 하나 건네셨다. 바이어가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어쩐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특이한 보석으로 만든 기념품 목걸이였다. 나는 그때 일을 살면서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세월 지나도 알 수는 없지만,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이별에 가만히 애도를 보내는 수밖에. 그때 그곳에서 그의 표정은 분명 억지로 한 세상을 저버리는 아픈 남자의 그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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