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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4. 2023

별 것 아닌데 슬픔이 되는

< 붕어빵을 사는 이유 >

 LA 한인타운에 꽤 오래된 붕어빵 가게가 있다. 그 옆엔 김치찌개집이 그 옆엔 치킨집이 있어 갈 때마다 붕어빵을 한 봉지 사게 된다. 어떨 땐 배가 부른데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곤 했다. 붕어빵만 보면 마음이 조금 따듯해지는 것 같았달까.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참 아련해지기까지 한다. 


  학교 앞 사거리에 붕어빵 장사는 추석이 지나면 시작되곤 했다. 요즘은 길거리 음식이 푸드트럭 으로까지 진화했지만 아직 동네에선 리어카 수준의 노점상을 볼 수가 있다. 세 개 천 원이었는데 맛도 좋고 크기도 커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위해 붕어빵을 사들고 올 때도 있었다.

 그날은 영하 십 오도의 날씨였다. 자동차 엔진 수리를 맡기고 덜덜 떨며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붕어빵 아저씨가 막 마무리를 하던 참이었다.

 "이거 가져가서 드세요."


  아저씨는 반갑게 뛰쳐나와 붕어빵이 남았다며 그냥 가져가시라고 봉지에 한 무더기 싸주셨다. 돈을 드리려 하니 절레절레 두 손을 흔드셨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나오는 별 거 아닌데 도움이 되는 빵 하나를 손에 든 주인공처럼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차가 갑자기 고장 나 짜증도 난 데다가 그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질 못했는데 마땅히 사 먹으러 들어갈 곳도 없었다. 먹을 걸 건네주시는 아저씨의 눈과 마주쳤는데 너무나도 커다랗고 선한 눈망울에 또 한 번 흠칫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그의 눈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리에서 그저 실루엣으로만 존재했다.

 그러다가 또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는데 어쩐 일인지 붕어빵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방학이라 문을 닫은 것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근 한 달간 긴 한파와 함께 붕어빵 아저씨를 볼 수가 없었다. 붕어빵이 생활필수품도 아니니 없으면 없는 대로 그의 존재를 잊고 나는 문제없이 잘 살아갔을 것이다.

  그를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가 겨울지나 초봄쯤인가 문을 여신 모습이 포착되었다. 붕어빵을 사 먹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동안 왜 문을 안 여셨냐고 물었다.

"하긴 너무 추웠죠."


  아저씨는 씩 웃으며 와이프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주책맞게도 그 자리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마치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하지만 그는 슬픔 따위 모두 잊어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씩씩하게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내게 뭘 그런 일로 다 슬퍼하시냐는 눈망울과 함께. 언젠가 내게 남은 붕어빵을 한 무더기 주실 때 ‘와이프 갔다 드리세요’ 했었는데 그때, ‘하도 먹어서 지겨워해요’, 하고 말했던 그분이 지금은 안 계시다는 이야기가 어찌 슬프지 않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날 씩씩하던 모습을 뒤로 붕어빵 아저씨는 영영 문을 열지 않았다. 아마 다른 동네로 갔을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붕어빵을 팔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붕어빵 아저씨의 사별은 우리와의 이별을 불러왔다. 나는 그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 같은 빵 한 조각에 특별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별의 허기는 채울 순 없어도 잠시 깜빡하고 잊을 순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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