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뭇가지가 추위를 가늠하게 하는 겨울, 언제나 입던 츄리닝 대신 슬랙스를 입고 교정에 들어섰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에 새로 산 가방의 옆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액정 너머로 엄마가 잘 등교했는지 밝은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높고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교정을 올려다봤다.
하얀 건물들로 가득 찬 이곳은 언젠가 부모님이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던 대학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유망했다. 항상 1등을 차지하고 특목고를 준비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셨다.
입시에서 떨어졌다. 일반고에 진학했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부모님은 잠시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나를 예전처럼 사랑해주셨다. 과거엔 그것이 부모님이 공부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야 알 것 같다. 그렇게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들은 실패자가 되니까. 사랑해야지 어쩌겠어, 같은 마음. 사실 자신들은 공부를 못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러니 공부를 못하는 자식은 자신들의 실패가 아니라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 깨달음을 잊어버릴까 했다. 그러면 덜 외롭고 어떤 모습이든 부모님께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안정감이 생길 것 같았다.
내면이 내게 말했다.
‘외면할 거야? 앞으로 더한 사실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려고.’
살아갈수록 더 외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됐지, 덜하진 않을 것 같아 결국 머릿속에 그대로 두었다.
부모님의 이런 모습에는 분명 그들만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성적을 잘 받거나 예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부모님께 말해드리고 싶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변함없이 사랑할 거라고.
천천히 느리게 부모님께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