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을 쓸어올린다. 활자가 내려간다. 보이는 모든 글자들이 가슴을 깊게 파고들고 파문을 남긴다.
단정된 문장 앞에서 흔들리는 사색은 의미를 잃는다. 나의 미래를 봐 버린 느낌이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고개가 점점 숙여진다. 섣부른 자신감을 잃는다.
페이지의 끝에 도달하자 내 글이 떠오른다. 유치해서 얼굴이 붉고 뜨거워진다.
심지어 라이킷도 눌렸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나를 덮친다. 근육이 오그라들며 몸을 움츠린다.
책상 위 노트북은 허망하게 하얀 화면만 내비친다. 검은 글자 없이 며칠 동안 방치됐다.
타닥타닥 막힘없이 두드렸던 자판은 이제 손조차 대기 무서워 몸이 굳는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암담함이 느껴진다.
약 이주 전 브런치를 시작하며 세상이 깨졌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깊은 사고들과 방대한 지식, 매끄러운 문장들에 우쭐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 글은 형편없었다. 읽는 게시물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 감각은 진해졌다. 눈은 높아졌는데 손은 그대로다. 그 글처럼 써보려고 해도 막상 늘어나는 검은 형체들은 얕고 조잡하다.
고개를 짧게 흔들며 흐트러진 정신을 붙잡고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반복해서 쓰면, 문장은 깔끔하고 세련되게 변할 것이다.
자판을 누르기 직전, 의문이 날 멈춰 세운다.
사고는 따라잡을 수 있을까?
축, 손가락이 늘어진다. 어떻게 그렇게 통찰력이 깊을까. 모호함과 막막함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액정 속 글자들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또다시 좌절감을 느낀다.
유치한 생각도 좋은 글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힘없이 중얼거린다.
곧 손가락이 자판을 두들긴다. 아무거나 써야지, 조금 막돼먹은 듯 뇌까린다.
비교도, 글을 볼 사람들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옅은 수치심이 배어있다. 부끄럽고 미흡한 글이 베를 짜듯 조금씩 완성된다.
화면이 검은색으로 가득 차며 마지막 문장에 다다른다.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결국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도 쓰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