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0. 부장님의 쓸모"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20

by 한자카

Chapter20.


부장님의 쓸모"


6월의 평범한 평일 아침,


하지만 일정표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울리는 캘린더 알리미ㅡ

회의, 방문, 미팅, 요약 보고, 또 회의, 그리고 난 외부일정 동선체크ㅡ

시동도 안 건 몸인데 정신은 이미 수원과 아산 사이 어딘가

있다.

주간 일정은 빽빽하게 짜였다.

메인 코스는 수원 연구소에서 시작해 아산 지점, 그리고 협력업체 현장까지

이어지는 풀코스 출장.

원래는 전무님과 회장님, 그리고 나—

셋이 움직이는 일정이었는데, 예상 가능한 예외는 또 터진다.

“야, 그 부장인가? 상무? 걔 누가 카니발 타고 다니잖아? 걔랑 같이 가자.” 회장님이

손사래를 치듯 툭 던지는 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안에서는 조용한 파동 하나가 일어난다.


“그 차 타고. 왜, 올라올 때 버스전용 차선 타면 되잖아. 빠르게.” 그 말 끝에,

덧붙여지는 마침표. “그리고 부장 셋, 아무나 불러. 같이 내려가게.”

나는 웃음을 참으며 ‘아.. 네’라고 말했다. 정확히 6인 이상이면

버스 전용 차선을 탈 수 있으니까.


잠깐만… 내심 생각했다,

고액연봉 인력 셋을 고속도로 우선주행권 확보용으로 호출하는 이 창의성.

조용히, 속으로만 경의를 표했다.‘버스 전용 차선을 위해 부장 셋을 부르시다니…’

‘이게 바로 고소득 고활용이지 뭐야.’ 크크.


출발 10분 전, 주차장에서 부장님에게 카니발 키를 받았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멈칫, 차가… 음.. 참 솔직했다.

그간의 시간과 피로, 커피 자국과 먼지가 숨김없이 진열된 작은 자취방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물티슈를 꺼냈다. 핸들, 기어, 버튼 몇 개.

내가 만질 곳만, 정말 딱"필요한 만큼만 닦았다. 쓱쓱,

바로 그게 오늘의 ‘출발 전 점검’이었다.

깨끗해진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정리됐다.


물론 회사에는 임직원 전용 대형밴이 따로 있다. 하지만 그 차는 이미

공항행 스케줄에 배정돼, 이른 아침부터 활주로 근처 어딘가를 달리고 있겠지.

결국 오늘 VIP 이동 수단은, 약간? 먼지 쌓인 카니발로 결정,


시동을 걸고, 조수석에 전무님, 2열에 회장님,3열에 부장님들.. 그리고

나는 운전석에서 이 작은 버스를 조심스레 출발시켰다.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회장님이 묻는다.

“야, 지금 버스 전용이지?”

“네, 정확히 6명이에요.”

“오~ 좋아. 이런 날은 기분이 좋단 말이야.” 회장님 특유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그래, 이런 날은 기분이 좋아야 한다. 안 좋으면.. 어쩔 텐가,


수원을 거쳐, 천안을 지나고, 아산까지.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차 안은 조용했고, 나는 운전에 집중했다.

누가 보면 일하러 가는 줄 알겠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지방 출장? 아니지, 그냥 잠깐 바람 쐬러 나가는 거다.’ 회사 이름을 단 나들이랄까.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잠깐이라도 떠나는 거라 생각하면,

도로 위의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앞에서 전무님은 생각하는 척"졸고 있고, 회장님은 핸드폰을 슬쩍

보다가 다시 창밖을 본다. 누군가는 이 시간 동안 손익 계산하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달달 외고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차선 위를 따라 적당히 묻혀간다.


너무 앞서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지방 출장이든, 고속도로 드라이브든, 결국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은 뒤로 남겨둔다.


그리고 오늘 나는,

버스 전용 차선 덕분에 아주 빠르게

잠깐의 평온과, 희미한 여유를 얻었다.


히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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