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예령이에게 전화가 왔다. 예령이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난,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다. 예령이는 요즘 회사 다니는 게 좀 힘들다고 했고, 요즘은 매일 저녁 10시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게 하루 일과라고 했다.
“게다가 어제는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육 개월 남짓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것에서 오는 아픔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 지를 가늠해보았다. 메스꺼움이 밀려오는 몸살 감기 정도일까. 교통사고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이제 우리는 어린 애들도 아니니까 미숙하게 마음을 움직여 사람하고 부딪히는 사고가 곧잘 나지는 않는다.
“그거 기억나? 너가 꼭 회사는 서울에서 좋은 곳에 다녀야 한다고 했잖아.”
스물네 살 무렵의 내가,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봐야만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낡은 약속을 허물며 심심한 사과를 건네듯 “뭐... 보이는 게 다르긴 하잖아”하고 머쓱한 대답을 내밀었다. 전화기 너머로 을지로 인근의 지하철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광화문, 여의도, 강남 그런 도시들의 높은 빌딩들을 사원증을 메고 돌아다니고 싶어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쓴 커피도 마시면서.
맞아, 하고 예령이가 대답했다.
“서울은 환상으로 가득찬 거 같아”
“그건 제주도 마찬가지야”
“어디든 똑같겠지 뭐” 하는 대화가 오고갔다.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삶은 없었어.”
예령이가 말했다.
“멀리서 보기엔 다 멀쩡해보여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그렇게 전부 엉망인지.”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야”
마치 그 말이 위로라도 되길 바라는 것처럼
나는 그 마찬가지, 라는 말을 낡은 장난감처럼 절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