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처음 말하다

박완서와 두 번의 침묵

by 응시

1950년, 전쟁, 스무 살의 여자가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다.

한국전쟁이 서울을 두 번 뒤집었다. 오빠는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오랫동안 쓸 수 없었다. 쓸 수 없었다기보다, 쓸 말이 없었다. 전쟁 뒤의 서울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누군가를 잃었고, 누구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문법이 없었다.


박완서는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았다. 살림을 했다. 평범한 중년 여성의 삶을 20년 동안 살았다. 그 20년 동안 오빠의 죽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몸 안에 있었다. 말이 되지 못한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라앉는다. 물 밑에서 형태를 바꾸며 기다린다. 박완서의 20년은 침묵이 아니라 잠복이었다.


1970년, 마흔의 박완서가 《나목》을 들고 나타난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마흔에 처음 쓴 소설치고 이상할 정도로 능숙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박완서는 20년 동안 쓰지 않은 게 아니라, 20년 동안 쓸 문장을 몸 안에서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이 길수록 첫 문장은 정확해진다.


그 뒤로 박완서는 같은 기억을 반복해서 썼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제목부터가 질문이다. 정말 있었는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는가.


그런데 박완서가 이 기억들을 쓰는 방식이 독특하다. 에르노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선명해진다.


에르노는 수치를 해부했다. 메스를 들고 한 층씩 벗겨냈다. 이것은 수치인가, 공포인가. 계급의 것인가, 가족의 것인가. 에르노의 시선은 차갑고 정밀하다. 차갑지 않으면 정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뜻해지는 순간, 감정이 분석을 흐린다. 에르노에게 따뜻함은 사치였다.


박완서는 다르다. 박완서는 어린 시절의 자기를 쓸 때, 그 시선이 따뜻하다. 전쟁 뒤에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팔아야 했던 자기,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자기, 가난이 부끄러워서 괜히 허세를 부렸던 자기 — 이 옹졸했던 자기를 박완서는 비웃지 않는다. 심판하지 않는다. 마치 손녀를 보는 할머니처럼, 그때 그 아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따뜻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에서 온다. 정확히 말하면, 상처가 심판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에는 속물이 많이 나온다. 남의 집 살림을 기웃거리는 여자, 아파트 평수에 집착하는 여자, 자식 성적으로 체면을 세우려는 여자. 한국 중산층의 속물성을 이토록 정확하게 그린 작가가 드물다. 그런데 박완서는 이 여자들을 비웃지 않는다.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읽으면 — 이 여자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가 보인다. 전쟁 뒤에, 가난 뒤에, 남편의 부재 뒤에, 자기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구조 뒤에 — 옹졸해지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던 사람들.


이것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박완서 자신이 그 옹졸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물이었던 적이 있고, 남의 눈치를 봤던 적이 있고, 체면 때문에 진짜 감정을 숨긴 적이 있다. 그래서 비웃을 수 없다. 비웃으면 자기를 비웃는 셈이 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타인의 약함을 판단한다. 왜 저렇게 사는 거지? 왜 떠나지 않는 거지? 왜 참는 거지? 상처를 겪은 사람은 이 질문을 할 수 없다. 자기가 답을 알기 때문이다. 떠날 수 없었던 이유를,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에르노는 이 앎을 해부로 썼고, 박완서는 이해로 썼다. 에르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물었다면, 박완서는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다음 날을 사는가"를 물었다. 같은 상처에서 출발했지만, 에르노는 메스를 들었고 박완서는 손을 내밀었다.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바꾸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해부할 수도 있고, 안아줄 수도 있다. 에르노의 방법이 맞는 사람이 있고, 박완서의 방법이 맞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직시했다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은 것은 문학이 될 수 없다. 돌아보는 방식은 각자의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뒷장이 있다.


1988년. 박완서는 이미 18년 차 작가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쓰는 것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해 5월, 남편이 폐암으로 죽는다. 석 달 뒤 8월,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스물다섯 살.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딸 넷을 낳고 마지막에 얻은 아들이었다.


박완서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남편을 보냈을 때는 그래도 남들 살 만큼 살다 갔구나 생각했다고. 석 달 뒤 아들을 보내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고.


이번에는 글이 작동하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 앞에서 20년을 침묵한 것은, 쓸 문법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문법을 만들었고, 《나목》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이미 가진 문법이 무력했다. 18년 동안 쌓아 올린 소설의 기술이, 타인의 옹졸함을 따뜻하게 감싸안던 그 시선이, 이 고통에는 닿지 않았다.


박완서는 절필했다. 묵주를 집어던지고 신에게 분노했다. 부산의 큰딸 집으로, 수도원으로, 미국의 막내딸 집으로 떠돌았다. 세상이 서울올림픽으로 들뜬 그해, 박완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소설이 아닌 것을 쓰기 시작한다.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자신의 말을 빌리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통곡 대신 쓴 것. 소설은 통곡을 감당하지 못했다. 산문도 감당하지 못했다. 남은 것은 일기뿐이었다. 형식도 독자도 문학도 다 걷어내고, 통곡이 종이 위에 떨어진 것.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이건 문학이 아니다. 이건 울음이다. 그리고 이 울음이 — 역설적으로 — 박완서의 글 중에서 가장 날것의 힘을 가진 문장이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오빠의 죽음은 20년의 침묵 뒤에 소설이 되었다. 아들의 죽음은 왜 소설이 되지 못했는가.


거리의 문제다. 오빠의 죽음은 전쟁 안에 있었다. 시대가 죽음을 감쌌고, 그 시대를 서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만 겪은 게 아니라는 감각이, 소설의 시선을 가능하게 했다.


아들의 죽음에는 아무런 서사가 없다. 교통사고. 우연. 아무 의미 없이, 창창한 스물다섯이 사라졌다. 같은 일을 겪은 세대가 없다. 공유할 수 없는 고통. 그래서 소설이 될 수 없었고, 통곡만 남았다.


그런데 박완서는 돌아왔다.


후배 작가 공지영은 이렇게 썼다. 이별한 아들의 생명과는 비길 수 없었겠지만, 모국어를 떠나서도 그녀는 살 수 없었다고.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고.


그리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일이 있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집에만 있던 박완서를, 출판계 사람들이 억지로 데려다 박경리 앞에 앉혔다. 다른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박완서는 위로가 싫었다. 박경리는 위로하지 않았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 밥을 차려주며, 많이 먹으라는 말만 했다.


글이 무력한 자리에서, 밥이 사람을 살렸다.


돌아온 뒤의 글은 이전과 달랐다. 오빠의 죽음 이후에는 전쟁을 소설로 만들었고, 타인의 옹졸함을 따뜻하게 감쌌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는 — 그 따뜻함이 더 깊어졌다. 그런데 더 깊어진 것이 아니라, 더 조용해졌다.


이전의 따뜻함은 "나도 그랬으니까 안다"의 따뜻함이었다. 이후의 따뜻함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기 있다"의 따뜻함이다. 이해에서 관조로. 설명에서 침묵으로. 분노도, 고발도, 설명도 줄어들고, 대신 —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그래도 보고 있는 시선. 그것이 후기 박완서의 눈이다.


에르노에게 수치가 렌즈가 되었듯이, 박완서에게는 상실이 렌즈가 되었다. 그런데 에르노의 렌즈가 세상의 구조를 비추었다면, 박완서의 렌즈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같은 길을 걷되, 에르노는 땅을 보았고, 박완서는 사람을 보았다.


박완서가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다.


침묵은 글이 익는 시간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오빠의 죽음 뒤 20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글이 모든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사실이다. 아들의 죽음 뒤 절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글이 무력한 자리에서도,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돌아온 자리에서 쓰는 글은, 이전에 쓰던 글과 다르다. 더 조용하다. 더 적게 설명한다. 더 오래 바라본다.


상처는 심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심판이 불가능해진 자리에서 이해가 시작된다. 이해가 시작된 자리에서 문학이 태어난다. 해부하든, 안아주든, 조용히 바라보든 — 방법은 각자의 것이다.


박완서에게는 두 번의 침묵이 있었다. 첫 번째 침묵은 글이 되었고, 두 번째 침묵은 글을 넘어섰다. 두 번 다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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